이 모퉁이 뒤에 좋은 게 있을 거라 믿어요

초등교사로서의 생활을 정리하면서....

by 소소

아이들이 다 하교하고 난 뒤

빈 교실 창가에 앉아 건너편 건물의 창들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세월이 참 빠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늘 바빴고, 늘 뭔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고, 늘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그렇게 하루를 쌓다 보니 어느새 나는 퇴직이라는 단어 앞에 서 있었다.


교직의 길은 언제나 반복되는 같은 길 같으면서도 해마다 많이 달랐다.
매년 전혀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고, 다른 내용의 수업과 활동을 하고
그 아이들을 키워 떠나보냈다.
25번의 반복 끝에 그게 교사의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설 때는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가 앞섰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기쁨과 보람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매일 매주 수십 번 반복해야 하는 똑같은 말이 힘겨워지는 순간도 있고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이 즐겁기보다는 시끄러워지는 순간도 있고

아이들의 눈빛보다 내 눈앞에 펼쳐진 공문이 더 중요해지는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매 순간 나는 나대로의 최선을 다해왔고, 길을 잃은 순간순간마다 아이들은 나에게 등대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긴 세월의 학교생활....꾸준히 종착지를 향해 올 수 있었다.


이제 그 길의 끝자락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선다.
이제는 매일같이 울리던 시종소리 대신, 어떤 소리가 나의 시간을 채워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하루는 누군가에 의해 짜인 시간표가 아닌, 진짜 나의 하루일 것이다.

나만의 1교시 국어, 2교시 음악, 3교시 체육을 만들어보려한다.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길이 시작이다.
그 길의 이름이 무엇이든,
나는 믿는다.
이 모퉁이 뒤에는 분명 좋은 게 있을 거라고...(feat.빨간머리 앤)

작가의 이전글마지막 공개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