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겠노라 밝히고 나서 수없이 듣게 되는 질문들

나를 위한 걱정은 안 해줘도 될 것 같아

by 소소

"퇴직하신다고?... 진짜 힘드셨나 봐요!"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업무상 통화 끝에, 상대방이 '진짜 힘드셨나 봐요'라고 나의 퇴직을 정의 내린다. 순간 '아, 거기까진 아닌데... 뭐라 말하지...' 즉각적인 대답이 어려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금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퇴직하는 걸까? 진짜 힘들었었나?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다. '진짜 힘들었다'라고 말해버리면 내가 '도피' 내지는 '실패' 내지는 '포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원하는 뉘앙스의 표현이 아니다. 힘이 안 든 건 아니지만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다. 그냥 '더 이상 하기 싫다'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할 듯하다. '이만하면 됐다. 더 이상 안 해도 되겠다! 여기까지가 나의 시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25년을 나 자신을 위해 공부했고, 30년을 사회를 위해 기여했으면 충분하다 싶다. 나의 마침표를 찍는 당당한 선언이다.


"퇴직하면 뭐 하려고?"

"여행도 한 1년이지. 다 지겨워진대."

"평생 일하던 사람은 우울증 온대."

그래, 알겠다. 왜 안 지겹겠나? 산해진미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산해진미면 그게 뭐가 특별하고 맛있겠나.

당연히 일상이 단순하고 무료하고 지겹겠지. 그런데 그게 어때서? 원래 행복은 단순하고 지루한 데서 오는 거야. 날마다 변화무쌍하면 어떻게 살 수 있겠나? 물론 일상이 따분하고 지겨운 순간도 당연히 오겠지. 그 또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모습으로 기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삼시세끼 밥을 정성껏 지어먹고, 싱크대 구석구석 때도 닦아내고, 매일 아침 청소기도 돌리고 싶다. 평일 한가로운 시간에 줄 서는 맛집도 찾아가 보고 싶고, 비행기표 저렴할 때 맞춰 여행도 가고 싶다. 봄이면 꽃 보고, 여름이면 계곡보고, 가을이면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고, 단풍구경도 가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때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것이다. 물론 30년의 직장생활이 지겨웠듯이 일상의 또 다른 지겨움이 오겠지만 그게 어때서? 일단 내가 먼저 겪어보고 얘기해 줄게. 나를 위해 미리 걱정해 줄 필요는 없어. 그 또한 나의 선택이다.


연금은 언제 나오는데?

뭐 먹고살려고?

퇴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저 위의 두 번째 질문처럼 일상의 단조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꼭 한두 명의 친구는 이렇게 구체적인 경제상황을 묻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어려울까 봐 돈 보태주려고 하는 질문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손가락 빨지 뭐." " 소고기는 안 되겠고 돼지고기 먹으며 살지 뭐."라고 간단히 얘기한다. 굳이 그들에게 개인연금 바로 다음날부터 충분히 나올 거고, 마음껏 찾아 쓸 퇴직금 제법 있고, 여행자금도 충분히 따로 모아뒀으며, 평생 먹고살 돈 준비되었다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다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각자의 계획과 준비로 퇴직을 을 결정했을 것이다. 누군가 정말 진지하게 퇴직준비에 대해 자문을 구하지 않는 이상, 세세한 것을 공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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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다고 내가 달라질 것은 없다.

나를 위한 걱정은 안 해줘도 된다.

출근은 안 해도 재미있게 살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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