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끝이면 저 길로 가면 되는 거야
만 62세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나는 55세에 명예퇴직을 하겠다는 결심을 밝힌 뒤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만두면 뭐 할래?”였다.
나는 이 직장에 몸담고 있지 않아도
내가 태어난 이후로
쭉 그래왔듯...
나는 언제나.... 여전히 '나'인데...
뭐를 하는게 뭐 중요하다고....
또 뭐를 안하면 어때서....
이 자리를 떠난다고 해서
내 삶의 무게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주변의 풍경이 조금 달라질 뿐이다.
돌아보면 인생의 굽이굽이 갈림길마다
나는 나의 선택을 따라 걸어왔다.
때로는 불안했고, 울고불고하기도 했고, 자신이 없던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다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삶이란, 지나고 나서야
그 순간의 의미를 또렷이 보여준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정해진 신호와 규칙이 있는 길이었다.
출근과 회의, 수업과 평가와 여러 일정 들이 내 몸의 리듬을 대신하던 시간들.
이제는 그 길이 끝나고,
표지판도, 신호등도, 정해진 답도 없는 길.
대신 바람과 햇살이 있고,
내 몸의 리듬을 따라 길 위에 선 나만의 호흡이 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한 걸음 느리게 걸어보려 한다.
길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되돌아온 시간을 조용히 쓰다듬고,
바위에 드러누워 잠깐 쉬기도 하고,
흘러가는 구름 따라 내 마음도 흘려보내리라.
지난 55년 동안
나는 정해진 길 위에서 성실히 걸어왔고 잘해왔다.
이제는 조금 서툴러도 또 다른 나만의 길을 만들어 걸어보려 한다.
“그래,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이제 또 시작하는 거야. 그냥.... 그냥... 걸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