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 그런 사람

단화 한 켤레를 받은 날

by 소소

"OO야, 내가 너희 사무실 앞으로 잠깐 갈게.

사놓고 안 신은 단화가 있는데, 너한테 맞을 거 같아서."


한 번도 함께 근무한 적은 없지만, 20년 넘게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 알고 지내는 언니가 있다.

같이 일한 적이 없으니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업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돕고, 정보를 나누며 관계를 이어왔다.

만난 횟수를 따지자면 1년에 한두 번?

몇 년씩 얼굴 한 번 못 본 채 전화로 안부만 주고받던 때도 있었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이런저런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코로나가 거의 끝났음에도 뚜렷한 계획 없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OO야, 놀면 뭐 해. 여기 이력서 한번 넣어봐. 작은 업체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워밍업 한다고 생각하고 일단 해봐."


나를 다시 업계에 복귀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준 언니.

부드럽지만 단단한 손길이었다.


지금 나는 언니가 소개해 준 곳을 거쳐 조금 더 큰 회사에 다니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언니와 나는, 가끔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사이일 뿐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언니 회사가 내 사무실 근처로 이사를 와서, 이렇게 잠깐 얼굴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여행을 같이 다니며 자주 만나는, 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보다

이런 적당한 거리의 관계에서 더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OO야, 잘 지내지? 날이 많이 더워졌네. 어떻게 지내.. "

가끔 걸려오는 언니의 안부전화.

특별할 것 없는 말들에 오히려 마음을 토닥이는 위로를 느낀다.

왜일까..


내가 애쓰지 않아도,

20년 넘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해 왔다.

내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고 잘 이어나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단화를 받고 고마운 마음에,

"언니, 시원한 음료수 사드릴게요. 잠깐 시간 되시죠?"

" 아냐, 됐어 됐어 "를 연발하며 언니는 총총 사라졌다.


오늘 언니가 준 단화를 신고 출근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신발이라, 발이 아프면 어쩌지, 밴드를 챙겨갈까? 고민하다가

정신없이 나오느라 깜빡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마치 여러 번 신었던 것처럼 편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쏙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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