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의 말은.. 틀렸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던 몇 년.

by 소소

6년 전 겨울, 정확히 몇 월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집을 찾아가는 낯선 길바닥에 쌓인 눈이 군데군데 얼어붙어 있었다.

1월이나 2월, 아니면 12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즈음 나는, 너무도 힘든 회사생활을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계속되는 야근에 차가 끊겨 택시를 불러 집에 가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렇게 아무리 일을 해도 돌아오는 건 마음의 상처뿐이었으며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족과 관련된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회사나 집이나 어느한곳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사람이 힘들면 어디라도 기대고 싶어지는 걸까.

딱히 믿는 종교가 없던 나는, 문득 후배 선아가 언젠가 말했던

용한 점집이 떠올랐다.


선아에게 연락처와 주소를 받고, 퇴근 후 그 집을 찾아 나섰다.

골목골목 똑같은 집들이 빼곡히 있는 주택가였는데,

길치인 나를 위해 선아는 열심히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신호등을 건너면 슈퍼가 보이고, 슈퍼를 끼고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초록색 대문이 있는 3층짜리 집이 보이는데 그 집 3층이에요."

대략 이런 식의 길안내였다.


그 집을 겨우 찾아 들어가니, 곱게 화장을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오느라 고생했다는 인사말을 건네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전반적인 사주풀이를 해주고,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했다.


내가 어떤 걸 물어보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내가 언제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한창 일할 나이를 한참 넘어선 나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고,

또 힘든 것도 힘든거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더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었다.


"00살이 되면 그냥 살아져요. 특별히 뭔가를 안 해도 먹고살아져요.

그때까지 잘 버텨봐요. 그럼 그때는 다 괜찮아져요."


점쟁이가 말한 00살, 6년 후.

그 6년 후가 올해다.

나는 그날 이후 지금의 나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계속 생활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6년만 버텨보자 생각했고 그래도 그때는

괜찮아진다니 왠지 모를 희망도 생기는 것 같았다.

여섯 살이란 나이를 더 먹는 것도 싫지 않았다.

그냥 빨리 그날이 왔으면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살았다. 더 힘든 날도 있었고, 조금은 살만하다 싶은 때도 있었다.

그래도 00살이 된다는 건 확실한 미래이니, 살아가는 힘이 생겼다.


희망차게 시작된 올해 1월,

평소에 나름 꼼꼼하고 매사에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 내가,

뭔가에 홀린 듯 스미싱 문자를 열고 파일까지 다운받는.. 그야말로 사고를 쳤다.

부랴부랴 모든 은행의 지급정지, 여신거래정지, 비번변경, 휴대폰 교체,

심지어 만든 지 열흘도 채 안된 여권까지 다시 만들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했다.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계속 몸이 안 좋았다.

소화불량과 메스꺼움, 심한 두통으로 꽤 오래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다.

또 고질적인 목 디스크가 올해 들어 부쩍 심해져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회사에 안 다녀도 먹고살아질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그래서, 점쟁이 말은.. 틀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리 크게 실망스럽지 않다.

힘들었지만,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그 희망이 마음 한켠에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 힘으로 버틴 6년의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점쟁이는 점을 봐준 게 아니라, 위로와 용기가 필요했던 나에게

그저 필요한 걸 해준 걸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젠, 그때와 같은 힘든 시기가 다시 온다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6년 전 그 겨울밤을 생각하면 이제 나는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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