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여름, 기억의 조각 - Aftersun 2022
11살 소피가 함께 여행온 아빠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고 있다.
소피는 내레이션을 하듯 아빠를 찍으며 아빠에 대해 얘기한다. 며칠후면 아빠는 31살이 된다고.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고.
터키의 한 휴양지로 아빠와 여행을 온 소피는 마냥 신이 나고 들떠 있다.
영화 '애프터썬'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샬럿 웰스'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며, 지금은 할리우드 대세배우가 된 '폴메스칼'과 첫 연기에 도전한 '프랭키 코리오'가 아버지와 딸을 연기했다.
며칠 후 31살이 되는 젊은 아빠 캘럼은 11살 딸 소피와 단둘이 터키로 휴가를 왔고, 휴가기간 동안 소피가 찍은 캠코더 영상은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캘럼은 소피의 엄마와는 원만히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이고, 여행 내내 소피를 많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피는 그런 아빠와 함께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한 리조트에서 또래친구도 사귀고, 언니, 오빠들과 놀기도 한다.
해맑고 귀여운 소피와 달리 캘럼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인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몸을 흐느적 움직이는 뒷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리조트 풀장 선베드에 힘없이 엎드려 있다가 소피가 깨우자 그제야 일어나기도 한다.
양탄자를 사러 간 상점에서는 쌓아 놓은 양탄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다가, 구입한 양탄자위에 지쳐 보이는 몸을 잠시 뉘어 보기도 한다.
한낮 태양을 더 가까이하려는 듯 베란다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가 두 팔을 벌리고 서있기도 하고, 어두운 밤 검은 바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이런 아빠의 상태를 소피는 전혀 알지 못한다.
소피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캘럼은 즐거운 휴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소피와 함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딸을 걱정하고 이해하는 좋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캘럼은 내면의 슬픔, 그리고 고통과 힘겹게 싸우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휴가가 끝나고, 캘럼과 소피는 공항에서 인사를 나눈다. 아쉬운 마음에 소피는 몇 번을 되돌아와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그런 딸과의 마지막 인사 후 캘럼은 돌아선다.
20년이 흘러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된 소피는 자신의 집 소파에 앉아 그 여름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돌려보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며, 사실에 상상을 보태 그 마지막 여름을 보낸 아빠를 기억한다.
영화 초 중반,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던 캘럼은 리조트 욕실 변기에 앉아 작은 가위로 깁스를 잘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가위에 찔려 피가 흐르고 고통스럽지만 캘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거실에 앉아 책을 보는 소피와 대화를 이어 나간다. 거실의 소피는 이런 상황을 당연히 전혀 알지 못한다.
거실의 소피와 욕실의 캘럼이 마치 화면분할처럼 한 화면에 보이고, 그래서 캘럼의 고통은 오롯이 혼자만이 감내해야 할 고통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 후반, 생일을 맞은 아빠를 위해 소피는 같이 관광을 나온 일행들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멀리 아빠가 나타나자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캘럼은 멀리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그리고 화면이 오버랩되며 발가벗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캘럼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만히 있던 그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 온몸을 들썩이며 소리 내어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마치 아무것도 자신에게 남은 게 없다는 듯 발가벗은 캘럼의 뒷모습을 보며, 저 젊은 아빠의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해 여름은 마지막 여름이 아닐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캘럼과 같이 나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브러치에 올린 글 중 내 아버지에 대한 글이 있다.
스무 해 남짓 함께 했던 아버지를 나는 이제껏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외로움을 깨달았다. 그때 아버지의 야윈 어깨를 감싸드렸다면 아버지는 좀 더 오래,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따뜻했던 미소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캘럼이 자신의 고통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짊어지고 간 것처럼 내 아버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영화 속 소피처럼, 그리고 나처럼 그 흔적을 기억해 내고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아무 소용없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소피와 캘럼의 그 여름은 이미 지나버렸고, 내 아버지도 침묵과 외로움을 남긴 채 떠났다.
하지만 그때 하지 못했던 작은 위로를, 지금 흔들리는 누군가의 어깨가 있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여름이 되지 않도록.
*사진출처 : 영화 '애프터썬' 공식 스틸컷 (배급사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