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관계의 끝
그저 오래 만나왔기에,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우리는 스스로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이렇게 오랜 친구들이 있다는게 나름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는 벌써 6개월 넘게 서로의 일상에서 사라졌다.
누가 먼저 등을 돌렸다고 말하기도,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아마 각자의 마음에 조금씩 쌓여온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차곡차곡 쌓이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었을 뿐.
그때그때 말을 했어야 했다.
불편한 게 있을 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말하고 이해시키며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조금 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불편한 진실을 꺼내는 순간보다 그로 인해 더 어색해질 상황이 싫어서
우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 번도 서로의 생각과 차이를 진지하게 터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저 생일을 챙겨주고, 때 되면 여행을 같이 가줄 그 정도의 동반자가 필요했었던 건 아닐까.
수십 년을 함께 했지만 불편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관계.
그 알맹이 없는 관계가 더는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버틸 수 없다고 느껴진 순간,
우리는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내 삶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과 다름없는데 감정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내 마음 한편에서는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의 깊이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았다.
수십 년의 관계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유대를 나누는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데 나는 수십 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