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는 이유
집에서 먹는 점심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회사를 그만둔 지 2주.
엄마가 여름 시작 무렵 보내준 오이지무침, 엊그제 만든 콩자반, 그리고 조미김으로 마른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카톡이 울린다. 조용한 집안에 갑자기 울리는 카톡 소리는 생각보다 꽤 크다.
오도독오도독 오이지를 씹다가, 한 번 더 울리는 카톡소리에 거치대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본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이 함께 있는 가족 단톡방이다.
경제신문 기자로 일하는 남동생이 밑도 끝도 없이 보낸 2개의 사진.
본인 포함 몇몇 기자들이 언론대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는 내용이 실린 신문기사다.
마저 오이지를 삼키고, 얼른 축하 이모티콘을 고른다. 가지고 있는 이모티콘이 많지 않아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사실 없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폭죽을 보낸다.
그리고 다시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이번에는 콩자반을 먹는다. 숟가락으로 퍼먹는 게 낫겠다 생각하며 젓가락으로 한알씩 한알씩 하염없이 집어 먹는다. 입안이 짜다.
나는 지금도 7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원망스러운 마음과 서운함이 그때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그때의 일.
그때 나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엄마도, 언니도 나를 도울 수 없었다.
돕기 싫어서가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동생은 그 반대였다.
물론 그 애 혼자의 결정은 아니었다. 올케가 반대 한다고, 그래서 자기도 어쩔수가 없다고 ..동생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말은 나를 미치게 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절박했던 시간이었고, 속이 타들어간다는 건 바로 이런 거였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정신없이 몇 날며칠을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결국 다행히도 아주 간신히 그 일을 해결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음속의 원망과 서운함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에게 도움받지 못했다는 생각, 특히 동생에 대한 생각은 나를 힘들게 했다.
각자가 사정이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머릿속의 생각과 마음속의 감정은 같지 않았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도 아주 조금씩 희미해질 뿐, 마음속의 그 응어리가 당체 사라지질 않는다.
말수가 많지 않은 동생은 본인에 대한 좋은 소식을 알리는 정도로 아주 가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동생에게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다. 진심으로 기뻐해 주지도 못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때의 일에 대해 한 번도 동생에게 말한 적은 없다.
얘기하면 더 서운해지고 그래서 서로에게 더 상처가 될 것 같아서였다.
일 년에 서너 번의 가족모임에서 나는 그 일이 있기 전처럼 동생내외를 마주한다.
하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적인 말들에 동생도 모를리는 없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이젠 잊힐 만도 한데 닦아도 닦아도 또 쌓이는 집안의 먼지처럼 사리지질 않는다. 그래서 서운함과 미안함이 공존한다.
차가운 물 한 컵을 다 들이키고 점심상을 치우며 생각한다.
그때 난 내 힘으로 해결했고 동생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 그러니 이젠 정말 그 일에서 자유로워지자.
그래서 이젠 진심으로 너에게 폭죽을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