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의 대표도 결국 사람
제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는 친척 분이 운영하는 SI 기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회사의 직원이지만 그 회사의 대표의 위치에 있는 분과 소탈한 대화를 일상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닐 때 50명이 너는 회사의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낀 건 확실히 한 회사에는 이상주의자도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이상주의자는 대표님이었겠죠? 당연히 현실이 중요하지만 너무 현실만 생각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는 위태로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회사 이해 관계자들이 당장의 매출, 당장의 이슈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고, 대표라는 직책은 그 이상, 그 앞의 이정표/비전/계획이 있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대표님께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과 입장의 차이로 직원과 대표는 늘 껄끄러운 관계일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이게 회사 다닐 때 이야기이니 최소 8년 전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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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저는 그 회사를 퇴사했고, 직원은 한 명뿐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규모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지만 직원은 분명하게 아니니 저도 대표가 되겠죠? 퇴사한지는 4년이 조금 넘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일만 하며 살았고, 퇴사한 이후에도 다니던 회사에서 외주로 일을 맡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삼촌을 찾아뵙고 인사드렸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몇 주 전에 명절이라는 핑계로 삼촌댁으로 인사드리러 갔는데 일 하시느라 뵙지는 못하고, 작은 어머니만 뵙고 긴 대화를 하고 왔습니다.
저도 대표라서? 아니면 대표도 결국 사람이라서?
대화를 하면서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공감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퇴사하고 사업을 하고 있는 저도 대표이고, 삼촌도 대표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저보다 더 오래 사업을 한 삼촌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고, 저도 위안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던 겁니다. 게다가 삼촌도 회사를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인들만 퇴사를 고민하는 건 아니구나... 월급을 주는 사람도, 월급을 받는 사람도 똑같구나... 스트레스받는 거 똑같고, 일에 치이는 거 똑같고, 짜증 나고, 떄려치우고 싶은 것도 똑같은 겁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직원들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지만 대표는 직원들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겠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제가 직원이 아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단지 친인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도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삼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규모가 훨씬 저조차도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보다는 훨씬 더 큰 압박감, 스트레스, 고민을 가지고 있으시겠지만 저도 사업을 한다는 같은 입장에서 저보다 더 나은 입장의 대표도 나와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번 주도, 어제도, 오늘도 하는 일들 때문에 많은 고민거리가 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와 압박도 심합니다.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을 한다거나, 또 삼촌처럼 그 사업을 한 지 20년이 넘었거나 저처럼 얼마 안 됐거나와는 상관없이 쉬운 건 없고, 그래서 다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삭히고 또 일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다 그렇게 사는 건가 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사는 건가? 그럼 당연한 건가...? 음... 대부분의 그렇게 산다는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연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까... (ㅎㅎ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드는데 세상에 당연한 게 없다는 건 사업을 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입니다) 만약 저도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만약에 정말 잘 된다면 지금의 삼촌과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판을 바꿔야 하나?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은 일하는 방식, 정확히는 사업의 형태 혹은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큰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겠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 거 같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내가 하는 일이고, 내가 그런 생각이 들면 그게 맞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문제가 너무 많고, 해결할 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그리고 해결을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게 사업이죠. 근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사람 문제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누가 봐도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버티고 저에게 유/무형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는데 그런 사람이 한 명씩 나타나면 그때는 너무 힘들고, 버티기가 힘듭니다. 내 선택과 내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는 당연히 제가 해결하는 게 맞고, 그것도 저를 힘들게 하지만 버틸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닌 남의 잘못된 논리와 고집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저로 하여금 멘탈이 나가게 해 버립니다. 다른 일들을 할 수 없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 내 선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상식이 없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지금까지 한 걸 부정하게 만드는 겁니다. 당연히 버텨야 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애초에 그러지 않을 수 있는 판으로 갈아타고 싶은 겁니다.
그래... 너네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아라.
너네를 바꿀 수도 없고, 스스로 바뀔 생각도 없는 것들이니 내가 너네를 피해 가겠다...
비 논리와 나이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엮이면 영혼이 털리는 느낌입니다. 잘못을 인정 안 하고,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약속/계약은 의미 없게 만들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
사람이 몰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판에 있기 때문에 엮일 수밖에 없는 이런 족속들... 그냥 그런 족속들이 적은 판으로 제가 옮겨 가는 게 장기적으로 저도 계속 사업을 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