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영원하지 않은 게 보통이잖아요?
투자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게 너무 잘되면 '이게 언제부터 잘 되지 않을까?'를 고민합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오래 기간 잘 될 수는 있겠지만 영원할 수는 없는 게 보통이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무리 오래 기간 잘 나간다고 해도 사람의 삶보다 긴 경우도 흔하지 않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운 좋게 내가 그 기회에 편승이 되느냐에 따라 나도 함께 잘 나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다행히 그 흐름을 잘 탔다고 해도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행운의 기한이 다 끝났을 때 내가 계속 잘 나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또 결정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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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운이 좋다고 볼 수 없는 저라는 사람이 그나마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전공도 아니면서 개발 분야로 진로를 선택한 겁니다. 그것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거라서 더 운이 좋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게 절대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제 스스로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니 적어도 저한테는 운이 좋았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타의에 의해 선택을 해도 개발자로 일을 할 수 있었을 정도로 개발 분야가 대우가 좋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개발 수요가 너무 많아서 개발자가 실제로 부족한 것이지만 제가 처음 개발자 공부를 시작한 시기는 일만 많고, 대우는 좋지 않아서 개발자를 많이들 하지 않으려고 해서 개발자가 부족했었습니다. 지금처럼 개발자가 대세인 시대가 아닌 걸 넘어 3D 취급까지 받았던 직종이었습니다. 그런 개발 분야에서 야근, 주말출근, 박봉을 받으면서 계속 일을 했던 이유는 애초에 취업 생각이 없었고, 결국에는 사업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돈은 조금 벌고, 일이 많더라도 이 경험과 시간들을 발판 삼아 결국 내 사업을 할 생각이었던 겁니다. 개발 분야로 사업을 하겠단 생각도 없었고, 명확하지도 않았던 내 사업을 준비할 시간과 돈을 회사를 통해 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6년 정도 일하고 퇴사를 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퇴사를 하고 사업을 하니 개발 관련 지식과 기술이 제 사업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고, 기회를 제공하더라고요. 심지어 세상도 바뀌어서 개발자 대우까지 엄청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퇴사는 했지만 개발자 경력이 있다 보니 거꾸로 개발과 관련된 사업 기회가 지금까지 꾸준하게 생기고 있습니다.
나와는 시작이 다른 신입 개발자
정말 개발자 시대라는 걸 느낀 건 제가 개발 회사를 6년 다니면서 한 번도 넘지 못했던 연봉을 초과해서 받는 지금의 신입 개발자들을 볼 때입니다. 게다가 재택근무이고, 복지도 장난 아니며, 이직도 굉장히 수월하다는 점입니다. 개발 일 자체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제한이 없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개발자 구인난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죠. 그 덕분에 개발 회사에서 퇴사한 지 4년이 넘은 저도 소소하게 기회가 생기는 거고요. 당연히 지금도 열심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들은 더 좋은 기회들이 더 많이 생기고 있을 겁니다.
가끔 그런 개발자들, 특히나 신입 개발자들 중의 극히 일부가 너무 조건이 좋아서 너무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종종 보거나 듣습니다. 저도 꼰대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저는 분명 회사에서 야근하고 주말 출근도 하고, 선임한테 깨지고 삽질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연 지금처럼 재택근무를 하면서 혼자 일하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걸 옆에서 보지 못하면서,
혼자 일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
저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저보다 절 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아 이런 게 있구나...', '이런 식으로도 하는구나....', '이게 뭐지? 나중에 알아봐야지...' 등등 정말 많은 할 일, 궁금한 것들, 자극들이 마구마구 생겨 났었습니다. 아무리 글/음성/영상 등의 자료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낮지 않은 연봉과 너무나도 좋은 워라벨, 나 혼자 편히 일하면서도 그런 게 가능할까? 이건 가능하더라도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마주치고, 얘기하는 거, 그러면서 알게 되고, 듣게 되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 없습니다. 회사를 다닌다는 거 자체가 수많은 단점들이 있지만 분명 장점들도 있는데 그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집단생활 즉, 사람들을 만나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조직에서 동일한 목표를 위해 협업하고 소통한다는 점입니다. 코로나 시대가 오고, 개발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서 지금의 신입 개발자들은 집이나 카페에서 혼자 일을 하는 게 보편적인 직장 생활로 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한테 주 5일 출근은 제게 삐삐와 같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말을 하는 회사를 상대로 직장인들은 재택근무가 업무의 효율이 더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한테는 맞는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 일부들은 "잠을 더 자서 일을 늦게 시작하고, 최대한 일 하는 시간을 줄이는 걸" 업무의 효율이 좋아진다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해야 되는 일만 최대한 여유로운 일정 동안에 해내고 있었습니다. 뭐 이건 그렇다 치고, 이런 업무 방식이 내 개인의 역량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리가 없습니다. 분명 제가 몸 담았던 개발 SI 분야가 IT계의 3D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신입 개발자들 연봉의 1/3만 받으면서 주 5일 출근, 야근,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과정들을 통해서 매일매일 새로운 걸 배웠다는 점입니다. 학원, 과외, 유튜브, 책 자체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출근해서 일을 하면 매일매일 모르는 것들이 생겨났고, 그래서 고생했지만 결국에는 이해해서 내 역량이 되었습니다. 그게 일상이었습니다. 재택근무하면서는 절대 불가능했을 회사 생활이었습니다. 나보다 뛰어난 개발자들과 일을 했고, 회의를 했고, 그러면서 혼나고, 욕먹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게다가 SI 업계의 특성상 타사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회사들은 대부분 대기업이었습니다. 나는 SI 중소기업에서 박봉에 야근에 주말 출근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인맥으로 만들 수 있었고, 다른 회사의 문화와 기술, 환경도 배울 수 있는 그런데 돈까지 받는 너무나도 좋은 실습의 현장이었습니다.
분명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퇴사를 해서 사업을 하며, 골라서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러면서 출퇴근하지 않고, 매일매일 내가 원하는 곳에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 기준에서 지금의 일부 신입 개발자들을 보면 높은 연봉과 더 많은 수면 시간 말고는 회사 생활에서 크게 남는 게 없는 거 같습니다. 신입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밖의 일들까지 하면서 내 실력을 키우는 게 너무 중요한데 그런 걸 하지 않으며 얼마 되지 않는 내 역량 내에서만 일을 합니다.
만약 지금의 개발자 품귀 현상이 끝났을 때 그래서 보통의 다른 직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까지 개발자 대우가 평준화됐을 때도 과연 지금과 같은 연봉, 워라벨, 복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개발자는 계속 시장에 공급이 되고 있고, 잘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건데 1년, 2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편안히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개발자 대우가 예전만 못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취업이나 연봉도 예전만 못하다고 느낄 때 과연 그때 나는 경쟁력이 있는 개발자일까? 연봉도 아쉽지 않은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얻게 된 출퇴근 시간을 잠자고 인터넷 쇼핑이나 게임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정말 업무의 효율을 좋게 하거나 나 자신한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