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은근히 이용당하는 시대
1년을 넘는 기간 동안 저와 매주 1회 카페에서 IT 교육/컨설팅을 받는 분이 있습니다. 처음 그분의 상황은 비 IT 분야에서 IT 분야로 이직을 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던 단계였습니다. 다행히도 IT 분야로의 취업은 빠르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매주 저와 만나서 정해진 주제 없이 그분의 회사 일에 대해서 조언이나 해결 방법 등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IT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사수도 없이 일을 하려니 쉽지 않아서 저를 사수 삼아 열심히 IT 분야에서 경력/경험을 쌓고 있는 거 같습니다. 최근에는 그분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 업무 시간에 카페에서 만나 자신의 회사 일을 하면서 모르거나 막히는 일이 있으면 저에게 바로 물어보는 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아마도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직 특유의 문화를 매주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것이고, 퇴사를 한 지금의 상황에서도 가장 피하려고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저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대한 회사와 주변 사람들의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떤 식으로 열심히 일하느냐"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방식"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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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이 답은 아니다
열심히 하는 거에 비해서 그 결과가 별로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있고, 당연히 회사에서도 있습니다. 학생일 때는 그 열심히 하는 과정 자체에 더 많은 가치를 두기 때문에 그 노력을 인정해 줍니다. 하지만 회사는 다릅니다. 말로는 인정해주지만 그 과정보다는 결과를 통해 능력자 혹은 필요한 인재 여부 등을 결정합니다. 이로 인해서 하는 일이 달라질 수 있고, 직급이 달라질 수도 있으며, 연봉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계속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가 계속 회사를 다니며, 연차에 맞는 월급과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는 게 답은 아닌 겁니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는 직원이라고 해도 결과만 좋으면 더 좋은 대우를 해줄 겁니다. 그럼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답은 없지만 확실한 건 무조건적인 '열심히'와 '부지런함'은 답이 아닐 겁니다. 결과가 좋은데 부지런하고, 열심히까지 하는 직원은 아마도 임원진까지 가겠지만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은 그 어떤 노력도 결국 술자리의 안주거리 이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남들은 부지런하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부지런하게 했다는 건 내가 뭔가 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비효율적인 거고,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발생시켰다는 겁니다. 같은 결과이면 효율적이게 잘해야 되고, 이왕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좋은 거죠. 즉, 무조건 열심히 하는 건 학생 때는 정답이 될 수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아닌 겁니다.
솔직히 이거는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제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거에 대해서는 회사라는 조직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제가 무능력하거나 회사에 맞지 않는 거니까요. 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부족할 때, 혹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 때 회사나 직장 동료/상사/후임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제 퇴사 결정에 있어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방식
매주 저와 만나서 본인의 일을 하면서 모르거나 일이 막히면 저한테 물어보는 그분을 옆에서 지켜본지도 꽤 오래된 거 같습니다. IT 경력이 없고, 사수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려다 보니 당연히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도 아예 제 일을 하면서 그분이 질문할 때마다 일을 함께 봐주고 있습니다. 즉, 매주 평일 업무 시간 중 일부를 각자 일을 하면서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거죠(이것도 나름 재미있는 형태의 업무 방식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일하는 걸 계속 옆에서 지켜보니 이 분이 아직 일을 잘 몰라서 그런지 혹은 성격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절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에서 주는 일을 무조건 받아서 본인이 다 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본인이 해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그걸 알려줄 사수가 없다는 것과 그걸 악용하는 같은 회사 직장 동료/상사들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분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계속 받아와서 고생하다가 결국 어둔 표정으로 저한테 물어보니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분이 저한테 질문을 한 일에 대해서 먼저 해야 되는 일인지 아닌지부터 판단을 해서 해야 되는 일인 경우에는 그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거절하는 방법과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해야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일이 많은 건 싫지만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일 커지게 하고 싶지도 않아서 맡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맡아서 괜히 쓸데없는 거 하면서 고생하는 게 일상이죠...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알아가는 것도 맞지만 동시에 이런 상황을 지적해 줄 사람이 옆에 있는 게 더 올바른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그런 사람 없이 혼자 일하는 상황이고, 심지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비 IT 인력들이어서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왜 1년 넘게 매주 저와 만나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결국 IT 지식을 알려주려는 목적의 수업이 회사 사수의 역할로 바뀌어 있는 상황입니다. 저도 회사에 다니면서 후임한테 일을 가르쳐 주는 기분이고요. 그러다 보니 가끔 화도 내고 있습니다...ㅋㅋ (물론 진짜 회사 후임이고, 같은 팀이었다면 더 많이 화를 냈을 겁니다...ㅎ) 당연히 더 어려워합니다. 단순히 일을 잘하고 싶었던 건데 그 잘하려는 일들 중에서 해야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까지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언쟁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옆에서 도와주고는 있지만 어쨌든 같은 회사는 아니기 때문에 제가 관여하거나 책임질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저한테 도움은 받지만 선택과 결정은 당사자가 해야 하죠.
공감
이 분께 제가 가끔 화를 내는 이유는 어쩌면 저도 그 분과 같은 상황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어서 일 겁니다. 제가 조직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표현은 했지만 결국 제가 조직이 녹아들지 못했던 거고, 일을 잘하지 못했던 겁니다.
나는 모르는데
그런데 혼자 내보내고,
모르면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보면 그런 것도 모르냐면서 화를 내고...
그런데 일은 해야 하고...
막상 일을 하면 왜 그것까지 너가 하냐고 뭐라고 하고...
그럼 또 늦게까지 일하고...
일정은 못 지키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시기까지 도달은 했지만 여전히 나는 열심히만 하는 직장인..
중소기업이라서 잘리지는 않고, 직급만 올라가니 나중에는 일 못하는 상사가 되겠더라고요...
이유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이것도 제 퇴사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퇴사를 해서 사업을 하고 있고, 저한테 1년 넘게 수업을 받은 분이 회사에서 제가 했던 고생을 똑같이 겪고 있는 걸 보니 공감이 되고, 화도 난 거죠. 하지만 하나 차이가 있다면 이 분은 결국 잘할 거라는 겁니다. 단지 지금은 새로운 분야로 취업을 해서 경험이 부족하고,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는 단계라서 고생을 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입니다. 저는 단지 그 과정의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거고요. 퇴사를 했는데 사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