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의 유무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변수
한창 회사를 열심히 다니면서 일 배우고, 삽질하기 바쁘던 시절...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여기저기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회사의 경영과 관련된 선택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xx 회사와 왜 계약을 맺지 않는 거지?
더 좋은 기술이 있는데 왜 사용하지 않지?
왜 옛날 방식을 고수하지?
왜 xx에 투자를 하지 않지?
등등 회사의 보수적이고, 우유부단하고, 지루한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테고, 이제 와서 보면 퇴사를 하고 사업을 하는 지금의 제 입장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결국 입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생각과 가치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달 고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직장인과 가만히 있으면 적지 않은 비용이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대표라는 입장과 역할의 차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도 할 말이 많을 거 같습니다. 그런 차이로 인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한 그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개인이나 직장인의 입장에서 일을 하며, 수많은 선택을 할 때 고려되는 기준이 뭐가 있을까요?
책임, 퇴근, 야근, 휴가일정, 업무량, 업무강도, 상사, 승진, 평가, 평판, 성과 등
회사 관점에서의 기준도 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결국 본인이라는 개인의 관점을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요즘 그런 경향들이 너무 강해서 발생하는 상황을 소재로 하는 개그/드라마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회사 대표 입장에서의 기준은 뭐가 있을까요?
매출, 수익, 세금, 직원, 계약, 경영, 계획, 신규사업, 사례 등
여기에 대표도 결국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직장인들이 고려하는 기준도 당연히 추가될 겁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로 인해 분야/회사/나이/성별을 불문하고 어느 조직에서든 대표와 직원 간의 생각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레퍼런스
http://www.podbbang.com/ch/1780825?e=24778576
SI 중소개발회사에 다니면서 자사는 물론 타사와도 장기간 한 사무실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대화/협의를 하다 보면 "레퍼런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레퍼런스에 대해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보통 연차가 높아서 관리자 역할에 가까운 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입 때 레퍼런스라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듣고, 또 그것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레퍼런스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저도 연차가 얼마가 안 되는 신입 개발자였기 때문에 레퍼런스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었고요.
'관리자들은 레퍼런스를 엄청 중요하게 여기는구나...'
그냥 이 정도만 생각하는 정도였고, 레퍼런스가 어떻든 간에 어떤 결정이 내려질 건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냥 하라는 일을 하기에도 바쁜 신입 개발자였으니까요.
그런 레퍼런스라는 용어/기준이 저한테 확 와닿은 건 퇴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천천히 스며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한 거 같습니다. 사업을 하니 선택과 결정에 대한 모든 판단을 스스로 해야만 했고, 그 결과도 오롯이 다 제가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도 신중한 걸 넘어 보수적이고, 우유부단하고, 지루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고, 그렇지 않으면 감수해야 되는 리스크/스트레스가 가끔은 너무나 버겁기도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받아들이고 있는 레퍼런스에 의미는 "사례/선례/검증" 이 정도입니다.
별거 없습니다. 일상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대다수의 결정을 따라가면 마음이 편하거나 고민을 덜하게 되잖아요? 내가 굳이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대다수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고 거기에 동참하는 거죠.
검증/확신
회사를 경영하고, 사업을 하고, 직원을 고용하는 입장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주변 혹은 경쟁사에서 동일한 결정을 내렸었고, 또 어떤 결과가 있었던 것을 참고해서 결정을 내립니다.
어디에서 어떤 걸 사용했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다
어디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다
어디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 매출과 수익이 어떻더라
이런 실제 발생한 사례들을 보고 판단하는 거고, 그 사례의 결과가 좋았다면 그 사례를 따라서 선택/결정을 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은 거의 모든 기업에서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에게는 '패스트 팔로워', '모방', '카피캣', '개선', '특허침해' 등의 표현이 따라다닙니다. 한 번의 결정으로 회사에 발생하는 피해가 작지 않고, 심지어 회사에 존망과 관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는 관리자나 대표는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직장인들은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저는 양쪽 모두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현재는 사업자이지만 저도 처음에는 직장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현재의 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도 예전만큼 거침이 없거나 실행력이 좋지는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이를 포함해서 여러 변수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거나 제 스스로 그렇게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저 거대한 결과를 일궈낸 사람들을 보면서 경이로울 뿐입니다. 흔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누구도 하지 않은, 그래서 레퍼런스가 전형 없는 일을 시도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도 있습니다. 만들어 낸 결과의 크기가 크거나 작은 것과는 별개로 레퍼런스가 '무'였음에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낸 그 사람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고, 궁금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사례가 없었음에도 어떻게 그걸 볼 수 있었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런 혜안은 어디서 온 걸까? 운이 좋았던 걸까? 타고난 무언가 있는 건가? 아니면 금수저인가? 등등 혼자서 궁금해하고 의심은 해도 비난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로이든 간에 자신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있으니까요.
입장이 바뀌어도 같을 수 있을까?
정말로 궁금합니다.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되면 자신이 직장인이었을 때 불평했던 것들을 하지 않고 있을까? 그때도 똑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을까? 굳이 직장인, 대표라는 제한된 틀에서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모두가 같은 판단과 결정을 할까요? 건물주와 세입자, 피해자와 피의자, 부자와 가난한 자 등등 실제 세상에서 진리라는 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이 유리할 수 있는 기준만이 각자에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듣기는 하지만 그뿐입니다. 절대적인 게 아니고 그 사람의 기준에서 불평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들어보면 불평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 기준에 의한 제 생각일 뿐이지 그것도 답은 아닙니다. 그냥 답은 모두 제각각 다릅니다.
레퍼런스라는 기준은 개인과 대표 모두한테 중요하지만 절실함이나 필수여부, 중요도에서 차이가 날 겁니다. 개인 입장에서는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참고하는 정도여서 결정 자체에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잘못된 판단을 했어도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정도의 실패는 피해를 입지는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레퍼런스 여부에 따라 선택이 바뀔 수 있으며, 심지어 비용이 덜 발생하더라도 레퍼런스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럴 이유는 있을 겁니다. 단지 입장과 상황이 다른 개인이 그 결정만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