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이면서 마지막 회사이기도 했던 중소 개발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당분간은 다른 거 안 하고 회사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SI 개발 회사가 박봉에, 야근도 잦고, 업무 강도도 세다는 걸 알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업하겠다고 까불다가 어느 것 하나 내 계획이나 생각대로 된 것이 없어서 막막한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사업을 접고, 졸업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자마자 지인을 통해 바로 취업을 한 거니까요. 오히려 운이 좋았습니다. 만약 그런 행운이 없었다면 절대 20대에 취업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2년 휴학을 했는데 2년을 회사와 학교를 병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입사를 하는 순간부터 죽었다 생각하고 일만 하려고 했는데 출근 첫날, 신입인 저에게 한 과장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여기 왜 왔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퇴사해서 더 좋은 회사 가
일 힘들고, 박봉인 건 알고 온 거고, 그럼 당연히 고생할 거라는 것도 예상은 했는데 출근 첫날 신입한테 과장이 첫 만남에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은 물론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첫인사라서 입사한 회사의 월급이나 워라벨보다 이 말이 훨씬 임팩트가 강해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퇴사할 때까지도 이 말은 여기저기에서 항상 들렸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한숨과 같이 그냥 일상적인 일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입사 첫날, 임팩트 있는 대사를 날린 그 과장님은 그런 일상적인 소리를 항상 뛰어넘는 강력한 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매일매일 갱신해 나갔습니다. 제가 퇴사하는 그 날까지도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그 사람과 내가 속한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이해가 됐지만 정말 회사 다니는 내내, 만나는 내내 그런 말을 달고 사는 건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말 일상적으로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회사 욕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iTLWZNB_Go
그리고 제가 그 회사에서 대리가 됐을 때는 그 과장님의 불평 대본에는 한 가지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나 부르는 회사 있다.
조건도 여기보다 훨씬 좋아
제가 속했던 분야가 워낙 이직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거기에 더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는 회사도 있다고 하니 곧 퇴사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기 그런 결정을 하기도 했고 너무나도 일반적인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가 퇴사할 때까지도 이직을 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2년을 더 다니다가 비로소 이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 사람은 직장 선후와 동료들한테 이직하는 그날까지도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며 이직을 해서도 자신이 10년 넘게 다녔던 회사를 욕했을 겁니다.
제가 퇴사를 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까지도 그 과장이 퇴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따져 보니 제가 퇴사하기 전에 그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이직을 했는데 회사에 그렇게 불만이 많고, 여기저기 회사의 단점을 설파하고 다니던 그 사람은 그때까지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정말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란 것을 넘어 경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든 캐릭터입니다.
회사에 불만이 있는 건 정말 당연한 겁니다. 제 경우에도 그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애초에 취업을 배제하고 사업을 시작했던 겁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특출난 것도 없는 내가 사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고 체념을 하자마자 운 좋게 취업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미련도 없었고, 회사에 대한 불만도 없었는데 오히려 이런 제가 이상한 겁니다. 제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에 대해 불만이 없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신입 때 위의 과장을 알게 되었을 때도 어느 순간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꾸준하게 열정적으로 회사의 단점을 큰 소리로 여기저기 설파하는 것과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이 그 회사를 10년이나 다녔다는 건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불만이 있는데 그 불만을 해소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결정이나 행동은 하지 않고, 불평/불만/욕을 하면서 그 상태를 유지한 겁니다. 게다가 혼자 구시렁거리는 거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에 그 감정을 마구마구 전염까지 시켰습니다. 자신의 불만이 모두 회사의 탓이니 회사가 그 불만을 해결을 해줘야 된다는 걸까... 그걸 기대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고, 욕을 한 회사를 10년 넘게 다닌 건가...
사람 자체는 분명 은근히 끌리는 사람이지만 그런 언행은 참 별로였습니다. 어쨌든 같은 회사이니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다고 생각하면서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고, 술도 함께 자주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사람은 곧 퇴사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퇴사한 후에도 계속 일하더니 기어이 10년을 채웠다는 건 솔직히 정말 엄청난 반전이었습니다. 무조건 저보다 빨리 퇴사할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본인도,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는 동행이 무려 10년이나 지속된 겁니다. 다닌 사람도, 데리고 있던 회사도 정말...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할 수 있음에도 왜 이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오래 회사를 다녔을까...?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한테 그렇게까지 회사 욕을 해야만 했을까...?
좀 더 일찍 이직을 했으면 본인이 말한 대로 조건도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는데도 굳이 왜???
추측은 해볼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가 있었지만 좋아지는 정도가 미비할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좋아진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조직과 문화, 일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익숙하기 때문에 변화를 오랫동안 거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만사가 다 귀찮아서 가장 쉬운 불평만 하는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회사가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그에게 더 좋은 조건의 기회 자체가 없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입으로 불평/불만/욕을 쏟아내면서도 그 현실 자체를 확 포기할 만큼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었던 거겠죠. 아니면 어떤 말 못 할 개인사일 수도... 어쨌든 이 사람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커져서 큰 소리로 여기저기 그 이야기를 전파시킨 시점부터 퇴사하는 그날까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를 한 겁니다. 그렇지 않고 실제로는 회사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주변에 거짓말을 하고 다닌 거고... 어떠한 경우든 그러한 결정과 행동이 본인한테 무엇이 남았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