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 것만 같던 어른의 맛
10대일 때는 소고기뭇국에 들어간 무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무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단단한 성질을 가졌던 무가, 물컹해지는 식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가졌다. 갈비찜에 들어가 부스러지는 당근, 흐물거리는 가지 등이 비슷한 군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갈비찜에 포슬포슬 부스러지는 감자, 막 쪄내는 고구마 모두 단단산 성질이 부드러워지긴 하는 걸 보면, 그냥 야채를 싫어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그때의 난 여전히 흐물거림, 물컹거림이 싫다고 얘길 하겠지만.
점차 자라나면 검은콩 조림(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도 먹을 수 있어지고, 고등어무조림과 소고기뭇국에 들어가는 무가 맛있어질 뿐 아니라 달아진다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줄 알았었다. 앞자리가 3을 넘어서고 나서, 이제 편식 투정이 귀여워지지 않는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소고기뭇국을 먹게 된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소고기뭇국의 무가 맛있어진 것이다!
어릴 때는 늘 그 맛이 멀게 느껴졌었다. 굳이 닿을 필요 없는 맛이라고도 느껴졌다. 어른의 맛을 알 수 있구나 하고 자랑스러운 동시에, 이제는 더 이상 물컹함을 핑계 댈 수 없는 이상한 서글픔도 느껴졌다.
가까운 미래에도 한국이 아니라 어떤 나라에 던져질
지 모르는 직업적인 이유가, 굳이 좋아하지 않던 맛을 좋아하게 만든 것이었는지, 한국의 맛을 홍보해야 해서 그런 것이었는지, 여러 핑계를 대 보려 하지만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한다고 하는데, 과연 알 수 없었던 맛을 즐기게 되니, 나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에 대해 늘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벌써 서른 중반이 된 이 나이에, 나는 적어도 더 많은 것을 나에게 기대했었다. 많은 것을 품어줄 넉넉한 마음, 실제로 내가 그렇지 않다면 별 시답잖은 소리도 웃어넘길 호탕함(또는 용기), 약점보다는 강점을 봐주고, 눈살 찌푸려지는 점보단 좋은 점을 봐주는 그런 어른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를 상처 주는 사람을 어김없이 미워하게 되고, 또 반성하는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래도 반성하고 있음을, 어른이 임을 기특해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본다. 소고기뭇국을 만들어보고 싶은 날이다. 이 무도 맛있어졌듯, 언젠가는 좀 더 큰 마음이 되겠지 하고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