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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n 28. 2022

모두가 떠나기 전에

열 번째 생일.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아이 : 애들이 방학하는 날 다 호치민 떠난대.
나 : 그래? 소피아도 간대? 주말 안 보내고?
아이 : 어. 금요일 밤에 비행기 타고 아빠한테 간대.
나 : 방학하자마자 모두 집에 가는구나. 그럼 생일 파티는 어쩌지?
아이 : 괜찮아. 엄마아빠랑 LA갈비 먹으면 돼.
아빠 : 그럼 방학 전에 하자. 친구들 불러. 아빠가 갈비 구워줄게.
아이 : 진짜?


방학하는 ,  친구들은 모두 고향으로, 한국으로, 프랑스로 떠난다고 했다. 생일파티  해도 괜찮다고는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주말에도 수업이 있다 보니 생일 주간에 파티를 해줄  없어서  방학하자마자 월요일에 려고 했는데, 초대할 친구가 없다니.


급하게 방학 전 주 토요일에 생일 파티를 한다는 초대장을 만들어서 아이 손에 들려 보냈다. 날짜는 잡았지만 생일 케이크 촛불만 끄고, 갈비만 먹을 수는 없었다.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생일 파티 때문에 주말 수업을 취소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심플한 생일파티 계획하기 미션. 그렇게 두 번째 생일 초대장을 보냈다.


Drop place : 우리 집

Pick up place : Thao Dien 교실


1부 :  Funny Daddy와 함께하는 홈파티

2부 : Art Mommy와 함께하는 클래스


집에서는 아빠가 피자와 치킨 너겟을 시켜서 점심을 먹고,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규칙은 간단하지만 스릴만점인 우리의 민속놀이 윷놀이를 외국 친구들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윷놀이는 생각보다 게임이 끝나기까지 꽤 오래 걸린다.


2부는 주말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미술쌤의 도움을 받아 에코백에 그림 그리는 수업을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받은 보석 십자수  만들기 키트 선물로 주고, 직접 만들어서 가져가기로 했다.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생일 초대장이었다. 1학년에 입학한 어느 날,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봉투 하나를 흔들었다. 첫 번째 생일 초대장이었고, 안도감이 들었다. 외국계 학교인 데다, 한국 학생이 없는 학교이다 보니 아이의 적응이 늘 신경 쓰였는데,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번에 학교를 옮기고, 같은 반 친구의 생일에 초대받았다. 초대받은 내 아이가 기특했고, 초대해준 친구가 고마웠다. 친구의 생일에 초대받아 갔던 날, 우리 집 어린이는 행복해했다. 그래서 바쁘지만 생일파티를 해주기로 했다. 전학생인 내 아이를 잘 받아준 친구들이 고맙기도 했고.


홈파티는 8명의 소녀들이 이렇게 시끄러운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란 아빠가 정신을 단단하게 붙잡아야 했다. 야채가 꼭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던 친구를 위해 오이와 당근 스틱도 준비했는데, 모든 메뉴 중에서 오이가 가장 인기 있었다니 아이들의 취향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부 아트 클래스도 성공적이었다. 한국 아이들은 알지만, 외국 친구들은 처음 경험해 본 보석 십자수 만들기에 집중하며 다 같이 즐거워했다. 만들기가 포함된 실용적인 선물을 하고 싶어서 며칠 동안 한국 쇼핑몰을 검색했던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어떤 캐릭터를 그릴래?


키티 친구 멜로디, 포켓몬 캐릭터, 키우는 강아지…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캐릭터까지 아이들의 주문이 쏟아졌고, 미술쌤은 아이들의 가방에 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다.

친구 : 나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딸 : 우리 엄마가?
친구 : 아니, 저기 있는 미술쌤.
나 : I’m sorry…


처음 만난 아이들이 보기에도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어 보였나 보다. 남편과 미술쌤 덕분에 생일파티는 잘 끝났다. 아이들을 픽업하러 온 부모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취향을 제대로 맞췄네요.


끝났다. 이제 어린이는 만 나이 열 살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힘든 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고 한다. 그래도 매일매일 학교에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는 건 싫은데,
학교는 좋아.


그 마음을 나도 알겠다.


그리고, 나를 위해 생일이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직접 치킨을 튀겨주시던 우리 엄마에 대한 고마움도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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