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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l 10. 2022

웰컴, 이방인

이제 우린 친구야

A : (영어) Tony 생일에 네 딸을 초대하려고.
나 : (영어) 정말? 
A : 네 딸이 Tyl이랑 친하잖아. Tyl 동생이 Tony와 친해서 둘 다 올 거거든. 
나 : 아~ Tyl 찬스구나. 고마워. 꼭 갈게.
A : 와준다고 해줘서 고마워.

매일 스쿨버스를 태우면서 눈인사하는 엄마로부터 생일 초대를 받았다. 같은 단지에 살고, 다른 작은 학교를 같이 보냈었고, 지금의 학교로 옮기는 시기도 같았다. 작년까지 다니던 학교에서는 같은 스쿨버스를 타도 탑승 위치가 달라서 인사할 일이 없었는데, 학교를 옮기고서부터는 매일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초대받을 만한 인연인 듯도 하다. 


Tony 엄마와 나 사이에는 Tyl이라는 내 아이의 친구 가족이 있다. Tyl의 가장 친한 학교 친구는 우리 집 아이이고, Tyl 남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는 Tony다. 그녀가 우리 집에 슬립오버를 올 때면 동생은 Tony네 집에서 슬립 오버한다. Tyl의 엄마는 한 번에 두 아이를 슬립오버 보내고 하루의 자유를 얻는다. 


우리 엄마는 가끔 너무 힘들어서
혼자 쉴 시간이 필요하대요.


이번에 Tyl은 프랑스에서 베트남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그녀의 가족은 베트남에 코로나가 너무 심해 집 밖 외출도 힘들던 시기에 프랑스로 떠났다. 친구와 연락이 잘 안 된다며 서운해하던 아이에게 Tyl은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코로나로 모든 활동을 제한했던 베트남이 답답해서 떠났다고 했다. 당분간 아이들도 그곳에서 학교 다닐 것이라고 했다. 1학년 입학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가 떠났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렇게 떠난 친구가 1년 만에 돌아왔다.


Tyl의 엄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는 친구의 엄마가 아니라 우리도 친구가 된 것 같네.' 고맙고 반가웠다. 


나 : (영어) 프랑스 생활은 어때?
그녀 : (영어)응. 좋아. 다 괜찮아.
나 : 다시 돌아올 계획은 있니?
그녀 : 아직은 없어. 그곳 환경이 더 좋거든.
나 : 그렇구나. 같이 학교 다니면 좋을 텐데.
그녀 : 이제 베트남에 자주 안 올 것 같아. 네가 와.
나 : 그럼 내년엔 파리에서 슬립 오버야?
그녀 : Sure!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닌 Tyl의 엄마는 그곳에서 같은 유학생을 만나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고서 베트남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과 코로나가 맞물려 작년에 다시 프랑스로 갔다. 지금 그녀는 모든 게 좋다고 했다. 일도, 아이들 학교도 모두.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빛이 났다. 예쁜 건 언제나 부럽다.


그녀도 나도 이방인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이방인. 그녀는 더 좋은 선진국을 찾아 베트남을 떠났고, 우리 가족은 기회와 가능성을 보고 베트남에 왔다. "엄마는 가끔 너무 힘들어서 혼자 쉴 시간이 필요하대요."라는 아이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가족 없이, 친정 엄마 찬스 없이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맡길 수 없고, 내가 아파서 앓아누워도 대신 아이를 돌봐줄 친정엄마는 없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고, 친구가 만나고 싶어도 달려갈 수 없다. 외로울 때마다 "야." "너"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동갑 친구가 필요했지만, 마음 터놓을 그런 만남도 쉽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이 이곳에 살 때 아이들의 학교 픽업은 항상 멋쟁이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다. 집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반겨주셨다. 그녀에게는 매일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가 있었다.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에 살면서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를 감당하는 그녀에게서 동지애가 느껴졌다. 


막연하게 아이에게 내년에는 프랑스로 여행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정말 프랑스로 여행 오라고 한 친구가 생겼다. 여행을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늘 한 번 더 여행 가고 싶은 나라였을 뿐, 동경하던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면서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학교가 프랑스학교였다. 입학을 허락해 준 학교. 


그때만 해도 몰랐다. 지금처럼 프랑스라는 나라를 통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사람 인생은 알 수 없다. 내 나라를 떠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국 학교를 보내는 게 좋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어렵고 힘들다. 언어도, 공부도. 학교에서 온 메일은 언제나 번역앱에 복사해서 붙이기.) 


Tyl도 한국과 가까워졌다. 프랑스에서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도 한국 아이라고 했다. 


베트남에서도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한국 아이야. 


고맙다.  


Do you know <Squid Game>? 


수영. 공원. 보석십자수. 놀이터. 저녁은 피자. 
쌀국수 먹고 싶었지만, 쌀국수가 싫다는 베트남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서 점심은 카레.
달고나를 아니? 영화를 보지는 않아도 모두가 아는 <오징어게임>. "뽑기 성공하면 선물이 있을거야."라고 했지만, 나의 달고나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냥 달콤하게 먹는 걸로 만족하기.

어린이의 슬립오버는 힘들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사한다.
"또 와. 언제든지 너는 환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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