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회사와 계약을 하고, 담당 직원의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영어)
“걱정하지 말고 오세요. 통역이 함께할 거예요.”
하지만 말과 달리 바쁜 통역은 늘 나와 함께하지는 못했다. 대신 부족한 영어와 베트남어, 그리고 눈치로 다이렉트로 회의하며 생존하기를 3개월.
통역이 있어도 회의 때마다 할 말이 많다 보니 나의 급한 성격에 통역을 거치는 시간도 답답했다. 되든 안 되든, 문법에 맞든 안 맞든 직진이었다. 그러다 보니 통역도 슬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회사도 한국어를 잘해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한국 법인이니 한국어 하는 직원들이 있을 거라는 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팀 내에 한국인은 바로 윗 상사 한 분뿐이어서 팀원들과의 회의는 100% 영어로 진행됐다.
처음 2주 동안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what’s mean?”과 “What is OO?”이었다. 업무 관련 회의였기에 대충 넘길 수 없었다. 그냥 듣는 영어도 어려운데 베트남식 영어는 더 어려웠다. 자존심과 모른다는 부끄러움은 내려놓은지 오래였다.
“You shun….“
“What is shun?”
“Shun… shun…”
스펠링을 적어줘서야 알았다. Should.
그렇게 귀가 트이는데 2-3주의 시간이 걸렸다. 모르는 건 바로 인터넷 사전으로 알아보거나, 한글 그대로 발음을 적어두었다가 찾아봤다. 결국은 비슷한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해서 영어 수준은 조금씩 나아졌다.
문서 번역도 처음엔 통역을 통해서 했다. 하지만 팀원들과 한 번 더 베트남 정서에 맞게 글의 내용을 수정하고, 의견 조율이 필요한 것이 많다 보니 구글 번역기로 직접 소통하는데 익숙해졌다. 시간과 과정을 줄이기에도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문서를 영어로 작성하고 있었다.
생존 생활 영어에서, 생존 업무 영어로 진화한 나의 영어 실력. 그사이 교만해졌다. 내가 영어 꽤나 잘한다는 착각. 사실 그건 모두 팀원들의 배려였다. 영어 실력도 나아지긴 했겠지만, 적당히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케미가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경복궁에 갔다. 표를 사려고 줄 서 있는데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내 몸에 ‘영어 잘함’이라고 덕지덕지 붙어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입은 터지지 않았다.
(영어)
외국인 : 저기요…
나 : 어?
외국인 : 이 티켓을 너에게 주고 싶어.
나 : …… wh….y? …
외국인 : 우린 한복을 입어서 무료입장이거든. 근데 티켓을 미리 사둔 게 있었어. 그래서 너희가 이걸 쓰면 될 것 같아.
나 : 정말? ….. 고마워.(대화 끝.)
베트남에서였다면 훨씬 더 많이 떠들었을 것 같은데, 왜 그리 말이 안 나오던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경복궁에서 간간이 들리는 프랑스어를 듣더니 프랑스인들에게 가서 인사해보고 싶다고 했다. 도전과 용기 팍팍! 그러나 아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는 내가 한국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다지만 며칠 사이에 영어로 말하는 걸 모두 잊은 것 같았다. 어디서든 모국어로 말하면 된다는 편안함에 느슨해져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 하는 게 제일 힘들다니.
베트남에 와서 다시 영어로 회의할 일이 걱정됐지만, 그 또한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여기에서는 또 이곳의 마인드를 장착해서 영어로 나불나불.
그래도 내가 잘한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알았다면 진작에 영어 공부 좀 해두었을 텐데. 아니,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이런 내 영어 수준으로 어떻게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넌 어떻게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
그렇게 바로바로 아이디어가 나오니?
이게 진짜 내 생존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