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절반을 함께한 친구.
칠리 엄마 : 너무 덥다~
나 : 더워? 난 잘 모르겠는데... 너 프랑스 살더니 이제 베트남 사람이 아니구나. 이 정도에 덥다고 난리니... 이젠 내가 베트남 사람이야.
프랑스에서 아이의 친구 가족이 돌아왔다. 정확히는 방학 동안의 고국 방문이다. 베트남 사람은 베트남이 덥다 하고, 외국인인 나는 베트남이 안 덥다고 하니 국적보다는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가 보다.
5년 전, 아무것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엄마! 나 친구가 생겼어. 이름은 칠리야"
칠리... 고추라고?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하니 칠리가 분명히 맞다고 했다. 하긴, 베트남에서 내 이름은 '돼지'인데, '고추'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있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 같다. 같은 반에서 사귄 또 한 명의 친구 이름도 '칠리'라고 했다. 한 반에 '칠리'가 두 명이나 된다고?
이름이 뭐든 두 칠리에게 고마웠다. 프랑스어 한 마디 못 하는 내 아이와 놀아주고, 친구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두 '칠리'가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했다. 학교에서 만난 두 아이들은 키도 생김새도, 성격도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이름은 역시나 '칠리'가 아니었다.
첫 번째 칠리의 이름은 틸리안이었고, 두 번째 칠리의 이름은 셀린이었다. 아이의 귀에는 두 이름 모두 칠리로 들렸나 보다.
아이는 첫 번째 칠리와 더 친했다. 두 번째 칠리는 학교 선생님이 엄마여서 반의 감시자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놀기가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외부 간식이 금지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몰래 사탕이라도 먹을라치면 두 번째 칠리가 나타나서 선생님께 이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슬금슬금 피한 것도 이해가 된다.
첫 번째 칠리와도 위기는 있었다. 지금은 둘 다 기억 못 하는 초 1 시절, 어떤 일로 둘은 절교를 한 채 방학을 맞이했다. 우연히 쇼핑몰에서 마주쳤을 때도 서로 째려보고 지나갔다니 꽤나 심각했었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개학과 동시에 화해를 했고,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중간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위기가 있었다. 코로나 시국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첫 번째 칠리네 가족이 프랑스로 이주한 것이다. 몇 달, 혹은 1년 뒤에 돌아오겠다더니 결국은 유학 시절을 보낸 프랑스에 터를 잡아 버렸다. 그렇게 인연이 끝나버리는 줄 알았던 칠리네 가족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름방학과 함께 베트남에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칠리는 시차 적응도 하기 전에 우리 집에서 두 밤을 함께 보냈다.
작년부터 어린이의 여름방학 시작은 고맙게도 첫 번째 칠리가 열어주고 있다. 예전에는 말이 안 통해서 아이를 통해 칠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프랑스에 간 후로 영어가 많이 늘어서 칠리와 함께 영어로 수다를 떨고 있다. 칠리나 나나 고만고만한 수준이라 말이 잘 통한다.
칠리를 만나기로 한 날, 아이는 조금 걱정했었다.
"엄마... 틸리안 오면 우리 뭐 하고 놀지?"
"걱정할 필요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만난 두 녀석들은 만나자마자 여전히 뛰어다니기 바빴다. 10대에 접어든 두 아이 모두 훌쩍 커 있었다. 마주 보기만 해도 씨익 웃음이 나는 5년 지기 절친. 자기들 기준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초등학교에서 만난 마음 맞는 친구. 같은 곳에서 같이 지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렇게라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만나니 좋다.
"하룻밤 더 자고 가도 돼. 너 그냥 양틸리안 하자."
두 달 뒤 아이는 중학생이 된다.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두 번째 칠리와 재회한다. 그것도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