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Sep 01. 2023

호치민, 얼마나 알고 있니?

난 잘 몰라. 14년을 살아도.

"이번 여름 방학에 호치민에서 아이들이랑 한 달 살기 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필요할까?"


코로나가 끝나고 방학이 다가오니 베트남 호치민으로 한달 살기를 생각하며 연락오는 지인들이 있다. 한 달 렌트비는 얼마인지, 뭘 할 수 있는지, 아이들의 국제학교 캠프는 어떠한지 등등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호치민 물가가 저렴하지 않고, 한국 방학 기간과 호치민에 있는 국제학교들의 여름 캠프 시기가 달라서 실제로 한달 살기를 온 지인은 아직 없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놀러 온다고 하면 열심히 SNS 검색을 하며 벼락치기 호치민 공부를 한다. 어디가 핫 플레이스인지, 요즘 이곳의 트렌드는 어떠한지 모르는 영역이지만, 지인들이 호치민 여행을 선택하는 데는 나도 영향을 끼쳤을 테니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OO호텔 근처에 괜찮은 마사지집 좀 알려줘."


미안하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내가 사는 지역도 아니고, 중심가에 있는 호텔도 아닌데 호치민에 살면 호치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 지역에 가면 나도 똑같은 관광객 처지가 되는데 말이다. 이런 부탁을 가장 많이 하는 건 내 오빠다. 지인이 호치민에 여행을 왔다는데 동생이 산다는 걸 알고는 오빠를 통해 이런저런 부탁을 해온 것이다. 오빠니까 참는다. 이것저것 알아봐줘야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현지 지인’으로서 믿을 구석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은 한다.

 

호치민에 산다고 하면 늘 여행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호치민에서 매일을 여행처럼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단지 사는 곳이 다를 뿐 사람 사는 24시간 하루는 똑같다. 주변에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SNS에 #호치민일상을 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잘하지 못한다. 남들처럼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주도 없고, 부지런함도 부족하니 올릴 사진이 없다. 호치민 구석구석은커녕 대놓고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내 입맛에는 커피도 그 집이 그 집이니 익숙한 별다방이 제일 좋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을 가도 '우와~ 좋은데~'로 끝난다. 맛집을 다녀도 맛있다, 보통이네, 맛없네 라는 평가 외에는 할 말이 없다. 플레이팅이나 시즈닝, 재료에 대해 논하기에는 참 모자란 지식수준이다. 게다가 음식이 나오면 일단 입으로 먼저 가져가니 사진 찍는 것도 늘 뒷전이다.  쇼핑도 별 다를 바 없다. 동생이 호치민에 놀러 오면 재미있다고 자주 가는 사이공스퀘어(호치민 시내에 있는 의류 잡화 시장)도 한 번 다녀오면 지쳐버리니 그저 집이 제일 편하다.


부지런히 사람들과 며칠 어울려서 다니다 보면 금세 체력이 바닥이 나서 며칠 쉬어야 한다. 뭘 하든 가장 중요한 체력이 받쳐주질 않으니 지인들 따라 분위기 좋은 핫플레이스도 가끔만 가게 된다.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참 재미없는 일상이다. 나만 믿고 호치민 여행 오면 안 될 것 같다. 남들은 여행하려고 시간 내고, 돈 들여서 오는 나라에서 호치민을 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골프도 안 치고, 수영도 하지 않으니 밋밋해 보이는 삶처럼 보이기도 하겠다.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하면 집을 잘 꾸미고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예쁜 것보다는 심플하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호치민 내에서 이사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은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내 공간이어서 좋은 것이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다면 더 심플해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의 공간에 만족한다. 거실 벽 하나는 꼭 비워두고 싶어서 욕심껏 무언가를 더 채워 넣지도 않는다. 이 또한 가볍게 살겠다는 실천이다.


나는 내 일상이 지루하지 않다. 커피는 집에서도 잘 마시고 있고,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뚝딱 집밥 요리 레시피 몇 개 정도는 알고 있으니 나름 맛있는 한식을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회사에 가서 회의도 해야 하고, 오후에는 수업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아껴 쓰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가까운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더라도 하루 동안 해야 하는 말은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래도 요즘은 주변 지인들을 잘 챙기려고 노력한다.

바빠도 꼭 실천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두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안부 전하기

가까운 지인의 경조사 챙기기

하루에 두 번 이상 생각나는 사람에게는 카톡으로 안부 전하기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있는 지인에게 분기마다 안부 전하기

주변에 바쁜 티 많이 내지 않기

받지만 말고 대접하며 살기

주변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내 몸도 챙겨야겠다. 일을 시작하면서 멈췄던 운동을 아이 개학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내 아이와 여행 다니려면 두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지인들이 놀러왔을 때 '호치민 좀 아는 척'하고 다녀야 하니 가끔은 여행하듯 다녀보기도 해야겠다.


내 스스로는 하지 않았을 투어를 여행 온 동생 덕분에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떠날 때는 말없이, 흔적도 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