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방송국에는 방송국에서 쓰는 용어가 있듯이 회사에도 회사에서 통용되는 용어가 있다. 나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리지만, 팀원 모두는 당연하게 알아듣는 그런 용어들 말이다.
첫 출근을 앞두고 남편이 해준 말은 하나였다.
모르면 물어봐. 그게 제일 좋아.
줄여 쓰는 한국말은 그래도 어떤 뜻인지 감이 오는데, 영어를 줄인 약자는 도무지 모르겠다. 완전한 문장도 어려운데, 그것마저 줄여놓았으니 스스로 노력해서 이해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같은 용어도 업계마다 쓰임새가 다르니 물어볼 수밖에. 그러면서 배워간다. 세상을 꽤나 살았음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전부를 합쳐도 이 세상 지식의 티끌 수준이 아닐까 싶다. 참 작은 존재다.
한 번에 다 잘 기억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두어 번은 되물어야 기억에 남는다. 짐작은 금지다. 그러면 배울 수 없다. 엉뚱한 내용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무조건 물어봐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신입사원 같다. 중고 신입사원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물어보는 건 전문 용어만이 아니다. 새로 나온 업무 툴도 때때로 물어봐야 한다. 한글 프로그램 하나면 뭐든 뚝딱 해내던 시절을 살았는데, 지금은 PPT와 워드 프로그램을 넘어서 주로 구글 문서를 공유하고 있다. 내가 만든 파일을 구글 문서에 새로 작업해서 만들지 않아도 업로드하면 파일이 생성된다는 것도 얼마 전에 친절한 도움 덕에 알게 됐다.(비디오나 사진만 올릴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도 여전히 혼잣말이 나온다. "한글 프로그램은 단축키를 현란하게 쓰면서 빨리 작업할 수 있는데..." 여전히 손에 익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의 꾀는 부리고 있다. 영어나 베트남어로 작업하는 파일은 어쩔 수 없이 워드나 구글 문서로 작업하지만, 프린트해서 한국어로 보고해야 하는 문서의 경우에는 남몰래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가장 쉽고, 편하고, 원하는 디자인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좋다. 여전히 엑셀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엑셀이 가장 쉬워"라고 말하는 직원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다. 역시 그들도 다 실력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구나 싶다.
배워야 성장한다.
배워야 잘할 수 있다.
물어본다고 내 자존심은 떨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술술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나는 계속 묻는다.
(현재 베트남 시간 밤 10:57.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으니 1일 1 글쓰기 챌린지는 성공이다. 하루가 참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