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얼마나 알고 있니?(2)
베트남에 처음 온 14년 전, 호치민 인문사회과학 대학 베트남어 랭귀지 코스를 아주 성실하게 1년 동안 다녔다. 버스를 잘못 타서 지각한 적은 있어도 결석한 적은 없다. 10여 년 만에 다시 대학에서 공부하는 기분이 좋기도 했고, 수업에 빠진 들 할 일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주 5일 학교에 가는 낙으로 1년을 보냈다. 한국인이 거의 없던 클래스에서 처음 경험하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과의 수업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외국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많은 것들이 무모했다. 요금 500원인 마을버스를 타고 1군에 나와서 택시비 기본요금을 내면 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택시비가 아깝다고 150원짜리 시내버스를 타기도 했다. 두어 번 버스 타기에 실패해 수업에 지각한 후로는 다시는 시내버스를 타겠다는 도전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택시비 아낀다고 수업 끝나면 마을 버스정류장까지 뜨거운 날씨에 걷기도 자주 했고, 무료 셔틀을 이용해 보겠다며 집 가까운 곳까지 운행하는 마트 버스를 기다리느라 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같은 클래스 학생들과 로컬버스를 타고 시장에 장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동네 마트에서 사도 되는 세제를 왜 무겁게 시장에서 사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재미였다.
초반에 너무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더 이상 언어 배우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정체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대학생 같은 생활은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 사이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도 자기 나라로 돌아갔으니 여러 면에서 흥미를 잃었다. 게다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주변 한국인들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하면서 베트남어를 빠르게 잊어 갔다. 열심히 배운 언어였지만 베트남에 살면서도 베트남어는 택시 탈 때와 마트, 식당에서 쓰는 게 전부였다. 그리 활동에 적극적인 인간은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필수 생활 베트남어만 쓰며 지내오다 요즘은 14년 전에 베트남어를 배우기 잘했다며 안도하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회의는 영어로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영상 제작은 베트남어를 모르면 작업이 어려웠다. 홍보 업무에 경력을 살려 사내 방송도 제작하고 있는데, 홍보팀 모두가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일일이 가르치면서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처음에는 대본도 직접 써서 베트남어로 바꾸어 다듬고, 녹음과 편집도 직접 했다. 베트남어를 배운 덕에 녹음할 때 눈으로 대본을 따라 읽으며 어느 부분에서 다시 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편집할 때도 어느 지점에서 자르고 붙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베트남어를 모르고 영어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사내 방송까지는 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든 배워두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나타난다. 베트남어가 그렇고 편집이 그렇다. 방송국에서 직접 편집할 일은 없었지만, 매주 봐 온 일이었으니 그동안 쌓인 감각으로 사내 방송 연출도 편집도 꽤 잘 해내고 있다. 주 2회에서 데일리 방송으로 늘렸으니 성과도 괜찮다.
베트남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려니 자꾸만 질문이 많아진다. 문화를 이해하고,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맛있으면 0 칼로리, 이런 표현은 어때?”
베트남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루저라고 생각한단다. 아웃.
“미래에 대한 주제를 다뤄볼까?”
미래에 대한 기준과 가치관이 달라서 보류.
“출근 복장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
주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그러고 보니 이 큰 회사 직원들의 복장은 신기할 만큼 자유롭다. 공감 얻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니 이 또한 아웃.
요즘은 이렇게 베트남의 문화를 좀 더 가까이에서 배우는 중이다. 이 또한 써먹을 날이 올까? 아마도 계속해서 베트남에 산다면 가능할 것 같다.
"넌 여기서 20년 채우겠다."
"에이... 설마요..."
사람 일 모른다지만, 베트남살이 20년은 채울 것 같다. 그 때에도 나는 말은 좀 하고 문화는 좀 알지만, 핫플레이스는 모르는 그런 사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