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떡볶이 만들어 주세요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끝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100원에 10개 주는 떡볶이를 사 먹었다. 그때 먹던 떡볶이는 늘 모자랐다. 하지만 왜 항상 주머니에는 100원 밖에 없었을까. 아쉬워하면서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도 친구들과 종종 떡볶이를 사 먹으러 갔다. 중고등학교 때는 즉석떡볶이를 좋아했다. 매워서 단무지를 다섯 번쯤 가져다 먹으면서도 떡볶이는 끊을 수 없었다. 갈 곳 많지 않은 우리들에게 떡볶이 집은 놀이터이고 아지트였다. 지금까지 많은 추억이 떡볶이와 함께 남아 있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면서, 떡볶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친구들과 쉼 없이 이야기하던 날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도 제일 많이 만들어 먹었던 건 떡볶이였다. 솔직히 친구가 만들어준 떡볶이는 그리 맛있지 않았다. 그래도 남김없이 싹싹 다 먹었다. 먹다 보면 맛있었다. 친구와 함께라는 최고의 떡볶이 양념 덕분이었다.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도 떡볶이였다. 단골 즉석떡볶이집도 그리웠고, 포장마차에서 서서 어묵 국물과 함께 먹던 떡볶이도 먹고 싶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 서글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꼭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 왜 베트남에는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가 없을까 또 한 번 서글픈 생각을 하면서.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마다 인터넷에 올라온 맛있다는 레시피는 다 찾아서 만들어 본 것 같다. 하지만 늘 아쉬웠다. 내 솜씨가 부족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먹고 싶은 건 집 떡볶이가 아니라 포장마차 떡볶이였으니까. 지금이야 한국에서 맛있다고 하는 떡볶이 브랜드가 베트남까지 진출해서 아쉬움은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억 속에 있는 포장마차 떡볶이는 그립다.
좋아하는 만큼이나 떡볶이에 대한 입맛은 나름 까다롭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떡볶이 소울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마찬가지일 거다. 자신만의 확고한 떡볶이 취향말이다. 역시나 떡볶이는 기본기 훌륭한 빨간 떡볶이가 제일이고, 떡은 밀떡이든 쌀떡이든 다 좋다. 어묵은 너무 많이 넣으면 떡볶이 양념 맛이 변해서 안 된다. 어렵고도 쉬운 말 '적당히'. 파는 듬뿍 넣을수록 좋고, 양배추는 푹 익은 건 싫고 아삭거림이 남아있는 게 좋다. 조금만 넣어도 국물 맛이 달라지는 마늘은 넣지 않는다. 맵기만 한 떡볶이는 싫고, 단 맛이 있어야 한다. 꾸덕한 떡볶이보다는 국물 떡볶이가 더 좋다. 이런 취향을 따라 온갖 레시피를 따라 만들다 보니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맛의 떡볶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물론 여전히 나는 사 먹는 떡볶이가 제일 맛있다.
이 글은 수업을 준비하며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쓴 떡볶이 추억에 대한 글을 조금 고친 것이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떡볶이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갑자기? 왜?"
"선생님은 떡볶이를 잘 만드실 것 같거든요."
방학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작은 이벤트를 해볼까 생각하던 차에 이런 억지스러운 이유로 떡볶이 파티가 흔쾌히 결정됐다. 먹고 끝낼 수만은 없으니, 떡볶이에 대한 글쓰기를 준비했다. 아이들에게만 쓰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떡볶이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떡볶이를 만들면서 들었던 여러 생각들, 표현이 솔직한 아이들이 맛없다고 하면 어쩌나 싶은 긴장감을 글로라도 덮고 싶었다.
떡볶이 파티를 외치긴 했지만, 이렇게 긴장되는 마음으로 떡볶이를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매우 솔직한 요즘 아이들인데, 한 입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과 함께.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음식 솜씨를 선보이는 건 꽤나 어렵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솔직한 만큼이나 착한 아이들은 지금까지 먹어본 떡볶이 중에 3등, 4등이라며 '극찬'을 해주었다. 1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역시 떡볶이는 양념이 전부다. 특히 이번 양념은 최고였다. 고추장도, 고춧가루도 아닌 ‘누구와 함께 먹느냐’는 최고의 양념. 게다가 맛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양념 ‘수업 시간에 먹는다‘가 팍팍 들어간 무적의 떡볶이였다. 그저 글쓰기는 디저트일 뿐.
나의 어린 떡볶이 동지들에게도 언젠가 오늘의 떡볶이가 떠오를 날이 있을까? 수다 떨며 먹던 떡볶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던 떡볶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나눠 먹던 떡볶이. 언젠가, 문득 떡볶이 냄새를 맡을 때 오늘이 떠오르길. 나처럼, 그리운 맛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