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수건 정리하는 날

내 피부는 소중하다

by 정은

오늘 꼭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수건이었다. 꽤 오래되었지만, (사실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직까지 낡거나 해지지 않아 여전히 쓸 만한 수건들이었다. 쓸만한 물건을 버리는 건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모품을 버리는 일에는 과감하지만, 계속해서 쓰던 물건을 버린다는 건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수건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전에 수건을 모두 꺼내 보송거림을 잃어버리고, 색이 바랜 6개를 골랐다. 그중에서 하얗고, 상태 좋은 두 개는 욕실 매트 대신 사용하던 수건과 교체했다. 그렇게 해서 정리된 수건은 모두 여섯 개. 비운만큼 수납장에서 새 수건 4개를 꺼내니 수납장에도 여유가 생겼다.

욕실 매트 얘기를 조금 보태자면, 우리 집에서 욕실 매트가 퇴출된 건 꽤 오래전이다. 자주 빨다 보니 모양도 변형되고, 어떤 것은 빨기도 불편하고 번거로워서 관리가 잘 안 됐다. 게다가 지금과 달리 베트남에서 원하는 디자인의 발매트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욕실 매트 대신 전용 수건을 마련해서 자주 빨아서 쓰는 중이다. 볕 좋은 베트남에서 수건은 널어놓으면 금세 바짝 마른다


수건을 휙 빨아서! 척 널어서! 쓱 접어서!
욕실 앞에 착!

이런 마인드 따위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얼토당토않는 일이고, 날마다 귀찮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습관처럼 하고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기에 깨끗하면, 집에 있는 시간들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이틀 차에 집안이 크게 달라졌을 리 없다. 그럼에도 작게나마 달라진 건 마음가짐이다. 조금은 더 부지런해졌고,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인지 마음도 조금 더 편안해졌다.


하지만, 계산하지 못한 변수도 있었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가 자꾸 무언가를 사 온다는 것이다. 내가 버리면, 아이는 사 온다. 방학 루틴이라며 어제도 집 한 채를 사 와서 조립을 시작했다. 스타벅스 컵을 버렸더니, 새 스타벅스 컵이 생겼다. 버린 공간만큼 새로운 것이 채워졌다.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지금은 나 혼자 시작한 <100일 비움 프로젝트>지만, 조만간 가족들에게도 오픈해서 동참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반란은 잠재우리라.


[버리기 2일 차]
-오래된 수건 6개.(깨끗해 보인다고 속지 말자)
-아이옷 옷걸이들
-오래된 화장품들.(아까우면 지는 거다)
-여행 보조 가방
-진정한 에코백이라 여겼던 쌀포대로 만든 가방들
-중학생은 안 쓴다는 디즈니 스티커
-그 외 다 쓴 메모지, 망가진 연필 등 잡동사니

*문제점
어제 버리고 새로 꺼낸 요리용 나무젓가락은 재료를 잘 집을 수 없고, 자꾸 미끄러져서 당황했다. 어제 버린 정든 나무젓가락이 무척 그리워졌다. 위생 따위 접어두고 계속 쓸걸! 하지만, 정신 차리고 지금 젓가락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안녕, 잘 가.
집 안에 집이 자꾸 확장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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