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차] 밖으로 나가야 보이는 풍경

도비는 오늘도 아침잠을 잤다

by 정은

한 해 한 해, 몸이 다르다.

이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다. 한때 미라클 모닝을 하며 새벽을 열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돌아와 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어차피 몇 년만 지나면 아침잠이 사라지니까 지금을 즐겨"라고 한다. 아침잠이 많은 것도 젊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도 위안은 되지 않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이 힘들기만 하다. 아이에게는 비밀이지만,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가끔 아침잠을 청하기도 한다. 혹시 아이가 서운해할지 모르니, 이건 언제까지나 비밀이다.


사실 아침잠도 습관이라, 웬만하면 안 자고 아이의 등교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그런데 집에만 있으면 자거나 청소하거나 정리하다 보면 아침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자꾸만 내 안의 도비(해리포터에 나오는 집요정)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아이의 등교와 함께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간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몇 시간 일을 하다 보면,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집중해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스타벅스에 가면 늘 창가 쪽 바 테이블에 앉는다.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며, 덩달아 힘을 얻기 때문이다. 집안에만 있으면 내 삶 밖에 보이지 않는데, 집 밖에 나와서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삶을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 읽은 <홍길동전>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책은 사람에게 배울 수 없는 깨달음을 주었고,
사람은 책이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알려 주었다.
사람은 살아 있는 책이었다.
(웅진주니어 재미만만 우리고전 시리즈 <홍길동전>)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거실 욕실에 들어간 김에 수납장을 정리했다.
‘언젠가’ 여행지 호텔에서 챙겨 온 칫솔 세트와 어메니티.

‘언젠가’ 여행 갈 때 쓰려고, 혹은 친구가 놀러 오면 주려고 챙겨두었지만 아직 꺼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쓴 적은 없지만, 앞으로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다.


잇몸이 약해서 호텔 칫솔은 쓰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챙겨 온 걸 보면, 습관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한다. 언제 다녀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호텔 로고를 보며,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하면 솔도 빠지는 일회용인데, 뭐가 그리 소중했을까. 앞으로 정리만큼은 ‘언젠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잠을 자면서 꿈을 꿨다. 집 안에서 뭔가를 찾는데, 찾는 물건마다 없어서 당황하는 꿈. 괜히 비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후회하는 그런 꿈. 이런 개꿈 때문에라도 아침잠을 그만 자야겠다.

[14일 차 버린 것]
-호텔에서 가져온 온갖 어메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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