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차] 반쪽짜리 비움

비움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by 정은

안 쓰는 물건 대부분은 신발장 안에 보관했다. 공간이 넓어 수납하기엔 딱 좋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게 되는 공간이지만, 한 번 정리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늘 외면해 왔다. 사실, 집에 있는 서랍장 대부분을 그렇게 ‘모른 척’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밀어 넣기는 쉽지만, 다시 꺼내기 위해 정리하는 건 쉽지 않다.

오늘도 그랬다. 어지럽게 나와 있는 물건을 또 습관적으로 신발장 안에 넣으려다가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어 넣어둔 것들을 다 꺼내서 정리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작은 서랍 두 개만 정리하기로 했다.

오늘은 너다! 수납공간이 부족한 집에 살면서 작은 물건들을 보관하려고 따로 사두었던 서랍이었다. 이제는 쓰지 않아 몇 년째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서랍 안에는 아이가 어릴 때 쓰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커다란 리본핀, 이름도 가물가물한 캐릭터 피규어들, 망가진 빗, 열쇠고리... 그리고 아이가 직접 쓰고 그린 이야기책까지. 어쩌다 넣었는지도 모를 약봉지들도 있었다.

약은 버리고, 리본핀과 피규어 같은 소품들은 나눔과 버림으로 나누어 골랐다. 이야기책은 보물처럼 따로 꺼내 두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서랍 안을 정리할 게 아니라 서랍 자체도 비웠어야 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면서, 굳이 서랍은 남겨둘 이유가 있었을까? 그저 다른 물건으로 채워 넣기 위해 자리를 만들어 둔 건 아닐까.

오늘의 비움은 반쪽짜리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비움에는 연습이 필요하니까.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일수록, 쉽게 방치된다.

비움이란 결국, 잊고 있던 것을 들여다보는 용기로 시작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내 마음도 정리 중이다. 몰랐던 내 마음을 알게 되고, 외면했던 부족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마음은 어디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그건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비움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습관이 될 때까지.


KakaoTalk_20250523_002159197.jpg 15년 전, 취향은 사치였던 시절의 작은 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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