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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Feb 03. 2020

긴 긴 Tet(설) 연휴의 마지막 날

아직 끝나지 않았네...

개인적으로는 차분했고, 조용했지만, 국가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는 매우 소란하고 불안하고 불편하기까지 한 연휴의 마지막 날.

베트남어로 설날은 Tet(뗏). 베트남의 공식 설 연휴는 일주일이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2주간 뗏 방학을 한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난 지 한 달만에 또 방학이라는 건 좀...)

많은 사람들이 호치민을 떠나면서 미세먼지 지수가 아주 좋아졌다. 시야도 맑아진 걸 보면 호치민의 그 많은 미세먼지는 매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맑은 날씨에는 제일 먼저 이불 빨래가 생각나는 건 왜인지. 왜 연휴에는 자꾸만 집안의 묵은 일들만 눈에 띄는 건 왜인지. 쉬라는 날에 자꾸만 일을 하겠다고 설쳐대고 있다.

아무튼 오랜만의 쾌청한 하늘이 반가워 매일 이불 빨래를 했다. 햇살도 뜨거워 널어놓으면 금방 바짝 마르니 빨래 욕심으로 하루에 두 번씩 세탁기는 쉼 없이 돌아갔다. 연휴가 끝난 시점인 오늘, 다시 하늘은 뿌옇게 흐려졌고, 미세먼지 지수도 높아졌다. 오토바이와 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미세먼지 지수를 높이는데 한몫을 하고 있긴 한가보다.


베트남의 설 연휴에는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문을 닫는 편의점들도 있고, 스타벅스조차 설 당일에는 반나절 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올해 사정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쇼핑몰도 대부분 문을 닫다 보니 많은 한국 사람들은 구정 연휴를 이용해 외국으로 여행을 가거나, 한국에 간다. 베트남에 남아있으면 고립이라고.

나는 호치민에서 자발적 고립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여차 저차 한 이유-뒤늦게 티켓을 사려니 너무 비쌌고, 만사 귀찮기도 해서-로 우리 가족은 별다른 계획 없이 미리 연휴 내내 먹을 식량만을 준비해 소박한 슬로 연휴를 즐겼다. 다행히 남아있는 아파트 친구가 있어 지루할 틈은 없었다. 연휴가 업무의 피크인 호텔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사정상 호치민에 남아있는 아랫집 친구네와 매일 눈 뜨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노느라 아이들은 심심할 틈 없었고, 얼마 전 호치민에 들어와 옆 동에 살고 있는 남편 친구 가족과 만두와 설 명절 음식을 만들다 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만두 만들기에는 남편들도 강제 동원된 모두가 즐거운 명절

오랜만에 일을 하면서 맞이한 연휴는 잊고 지내던 꿀맛 휴일이었다. 다시 출근하고 싶지 않을 만큼!! 온 가족이 쉬는 연휴에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넷플릭스 영화도 같이 보고, 냉동실 파먹기를 하며 매 끼니마다 이것저것 만들어먹었다. 평소에는 외면하고 싶던 청소도 의욕이 앞서 매일 구역을 정해 대청소했다. 닦고, 닦고... 버리고, 버리고...

누가 준다 하면 마다하지 않고 받아두었지만 아이는 읽지 않았던 전집들도 정리했다. 읽힐 거라는 욕심으로 계속 가지고 있어 봐야 아이에게 잔소리만 하게 될 것 같아 과감하게! 나의 기대와 달리 아이에게도 독서 취향은 있었으니까. 그 어미에 그 딸인 걸 어째.


연휴가 끝났다. 아니, 끝나기로 했었다. 일요일인 오늘 저녁, 학교로부터 메일이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주일 동안 학교 문을 닫겠다고 한다. 혹시라도 메일을 확인 못했을까 봐 담임선생님으로부터도 같은 메시지가 왔다. 아이의 학교뿐 아니라 호치민의 대다수 학교가 일주일 동안 휴교하기로 했다. 뗏 연휴가 일주일이 늘어난 셈이다. 즐거워할 수만 없는 일주일의 시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의 일들이 빨리 잠잠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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