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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an 13. 2020

오늘의 호치민 : 센트럴 파크

공원을 걷다

점점 생활 반경이 좁아지고 있다.

처음 왔던 10년 전에는 호치민의 구석구석이 궁금해서 두 발로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호치민에서 만난  첫 친구였던 남편의 회사 직원은 틈만 나면 나를 데리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개해주었고, 메콩 지역에  있는 고향집 친척 약혼식에도 데리고 가주었다.

인사대 베트남어 클래스를 다니면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도 수업이 끝나면 딱히 할 일이 없었던지라 로컬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쏘다니기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재미있게 보낸 호치민에서의 시간이었던 듯싶다. 아이가 없던 그 시절에는, 일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온 호치민에서 절반쯤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았지 싶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한국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면서 조금씩 생활 반경이 좁아졌다. 아이가 편한 곳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새로운 장소라고 해봐야 그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키즈 놀이터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더운 날씨에 금세 지쳐버리고 땀으로 샤워를 하는 덕에 제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시원하고, 차로 이동이 편한 곳이 제일이었다.


이제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고, 내게 주어진 시간도 늘어났지만 이미 굳어진 생활 반경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 나의 연식(피하고 싶은 나이...)이 쌓여갔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이든 어디든 한 장소에 머무는  게 좋기도 했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흥미도 어느 정도는 잃은 듯했다. 모험보다는 안정감이 좋았다. 어쩌면 오랜 일상이 된 호치민 생활에 무료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친한 동생 몇몇이 새로운 곳에 데리고 가면 ‘역시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제 발로 쏘다닐 의지는 재생되고 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오늘 만난 동생은 "왜요? 재미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이런 나에게 집 앞에 있는 공원은 상당히 고마운 장소이다. 이름도 그럴싸한 ‘Central Park’.

꽤 넓은 규모의 탁 트인 공원이기도 하고, 감히 호치민에서는 가장 잘 조성되었다고 생각되는 멋진 강변도 있다.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도, 조깅을 하기에도, 아이가 인라인을 배우고 타기에도 좋은 곳이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주민은 바비큐 시설도 이용할 수 있고(주말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지만), 커다란 놀이터도  두 곳이나 있으니 아직은 공부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게 좋은 어린이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공원이다. 집순이인 나도 나가자고 성화인 아이 덕에 공원을 많이 걷고 있다.

어른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고-현지인들은 오토바이용 우비를 종종 돗자리처럼 사용한다- 아이들은 연을 날리기도 하고 뛰어다니는 공원의 흔한 주말 풍경. 저녁마다 베트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공원 중앙의 잔디밭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작은 여유와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저녁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요즘은 나도 가끔씩 동네 친구들과 가벼운 먹거리를 준비해 공원으로 피크닉을 간다. 예쁜 피크닉 가방도, 제대로 된 돗자리도 없지만 운치 있는 그 시간들이 나는 좋다.


단조로운 나의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어준 센트럴파크.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비하면 매우 소박하겠지만, 아마도 당분간 공원의 매력에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단, 낮에는 공원에 갈 수가 없다. 너무 뜨거워서... 너무 더워서...! 그늘이 없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가끔 센트럴파크 놀이터로 야외활동을 나온다. 그런 날은 얼굴이 벌게진 채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얼굴이 하얘질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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