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 조금은 더 천천히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by 정은

뭔가 한 풀 꺾인 느낌이다.

정리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었다기보다는, 과도한 나의 의무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달까.

장염 후유증으로 기운이 없다 보니, 눈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내려놓는 수밖에.


오늘도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겠다고 했다.

"집을 정말 깨끗하게 쓰셨네요."

"거실이 다른 집보다 넓게 빠진 것 같네요. 아, 소파가 없고 정리를 잘해놓으셔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거군요."


살던 집이 팔려 계획에도 없던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칭찬으로 들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내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말 같아 내심 좋기도 했다.


남에게 내 집을 보여줘야 하는 건 참 불편한 일이지만, 베트남에 살면서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가끔은 현지인 집주인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기도 한다.


욕심을 비울 일만 자꾸 생긴다.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힘들 것 같다.

아이가 순리대로 잘 커주길 기대하지만, 사춘기는 참 요란하다.

건강하려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아프다.

통장에 있는 돈도, 쥐꼬리만큼 투자한 돈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되면 그건 투자가 아닐까?

비움도 과하면 안 된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눈에 보이는 걸 비우느라, 의무감의 압박이 늘어가는 걸 몰랐다.

심지어 이번 한국 방문 기간이 극성수기라 부산에 괜찮은 숙소 잡기도 어렵다.

다 내 마음 같지 않다. 참 어렵다. 다 어렵다.


어쨌든 이것도, 저것도 다 비우는 중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지금.

나이가 들어서인가... 회복이 참 더디다.

KakaoTalk_20230810_011932682_01.jpg 무탈히 잘 커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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