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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01. 2020

재택근무는 불가능합니다.

슬픈 호치민 자가 격리 라이프

한 번도 본 적 없는 텅빈 호치민 공항의 낯선 풍경.

호치민에 돌아왔습니다.  

오늘로 자가 격리 3일째입니다.

집에 오자마자 문밖에 쓰레기도 버리러 나가고 있지 않다가, 오늘 아파트에서 요구한 건간 관리 신고서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예상 가능한 그대로 14일 이내에 한국에 다녀왔느냐, 발열이나 기침 증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경우 이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아파트의 모든 서비스를 끊는다고 하니 받자마자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주중에 집으로 보건국 관계자가 찾아오겠지요. 괜스레 헛기침이라도 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도 쫄지는 않으렵니다.

요즘 매일 베트남 입국과 관련된 뉴스가 계속 나옵니다. 제가 들어온 3일 전이 그나마 안전하게 들어온 마지막 비행 편이었던 듯합니다. 3일 전만 해도 대구, 경북 출신이 아니고, 발열 증상이 없으면 큰 무리 없이 입국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대구 경북 출신을 확인하는 과정이 답답하긴 했지요. 대구 지역에 살지 않아도, 출생지가 대구 지역이라는 이유로 (주민등록증에 번호로 표시되어 있음) 입국을 거절당했으니까요. 입국 심사를 기다리면서 안타깝게 입국 거절당하는 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절차가 강화되었는지 일부 베트남 사람들의 입국도 보류되었습니다. 발열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별도의 공간에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베트남 거주증이 있으면 안전하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제가 들어온 다음 날부터는 지역 불문, 이유 불문 한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격리된다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어제부터는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착륙도 못하게 한다 하니 당황스러울 뿐입니다.(근처 다른 공항으로 가라고는 한다지만... 오지 말라는 것이지요.)

이틀 먼저 들어온 지인은 집 앞에 경비가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공항에 입국하면서 작성한 검역신고서가 지역 보건소로 넘어갔고, 보건소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이리도 철저히 한국인 입국자들을 관리하고 있답니다. 1일 3교대로 경비들이 한국에 다녀온 한국인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1일 3회 체온도 체크해서 보고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증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한국에 다녀왔다는 이유입니다. 숨 막힐 노릇이지요.

아직 제 입국 정보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넘어오지 않았는지, 아파트마다의 관리 정도가 다른 건지 그 정도의 강제 조치는 없지만,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알아서 현관문 근처도 안 가고 자가격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가격리는 그나마 괜찮습니다. 집에 못 돌아오고 시설에 격리되어 있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아직 들어오지 못하고 체념한 채 한국에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어느 분은 급하게 한국에 가야하는데 한국 가는 직항이 없어 싱가폴을 경유하는 편도 80만원짜리 티켓을 끊었다고 합니다. 비자 발급도 정지되어, 곧 비자가 끝나는 친구는 불법체류자가 될까도 걱정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언제쯤 안정될까요.

집 밖에 못 나가니 한국에 다녀오느라 밀린 아이의 과제물을 해결하기에 바쁩니다.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 하루에 이틀 치씩의 과제물을 시키려니 제 일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나마 수학은 혼자 하지만, 리딩이나, 어휘, 문법은 "엄마, 이게 무슨 말이야?" "엄마, 이 단어가 무슨 뜻이야?" 하고 불러대니 공부하는 아이 앞에 앉아있는 게 속 편합니다.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프랑스어 사전에서 단어를 찾다 보면 이게 아이 공부인지, 내 공부인지가 헷갈립니다. 그나마 요즘은 담임선생님이 하루가 지나면 답안지를 올려주셔서 그걸 참고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촬영해서 즉석에서 번역해주니 그걸 캡처해서 미리 훑어보는 요령도 생겼습니다. 혼자는 버거우니 프랑스어 과제는 엄마 몫, 영어 과제는 아빠 몫입니다.

어제 과제는 la, le, une... 와 같은 관사에 대한 과제였습니다. 언제 사용하는지와, la, le는 뒤에 단어와 붙으면 la ecole은 l'ecole로 바꿀 수 있다는 문법 공식. 가르치다 보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더군요. 프랑스어라고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게 아는데, 프랑스어 문법을 가르치고 앉아있으니 말입니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합니다. 아이와 같이 프랑스어 공부를 하니 엄마의 프랑스어도 늘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제 머릿속에 단어는 외워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완벽하지는 않은 구글 번역본과, 선생님의 해답지를 커닝해가며 꽤나 아는 척을 하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한국도 개학이 늦어졌지만, 호치민의 휴교령도 연장되었습니다. 앞으로 2주 연장. 도합 6주입니다. 대신에 고등학생들은 3월 2일부터 등교를 시작합니다. 휴교령은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만 해당됩니다.


삼식이 삼식이... 이런 삼식이가 없습니다. 삼시 세 끼에, 중간중간 간식까지 챙겨 먹여야 합니다. 외출을 못하니 냉장고도 비어가기 시작합니다. 아침 먹고 과제, 점심 먹고 과제, 저녁 먹고 과제... 제 작업은 대체 언제 하나요. 재택근무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아이 과제에 아이만 힘든 게 아니라 저 또한 힘듭니다. 공부만 하면 답답해하니 체육시간이라는 명목으로 좁은 집에서 축구도 하고 놀이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외동딸을 둔 엄마는 쉴 틈이 없습니다. 잠깐 쉬거나 작업을 하려면 또다시 아이가 부릅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의 재택근무는 오롯이 아이만을 위한 것인가 봅니다. 이 글을 쓰는 사이에도 벌써 다섯 번은 부른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을 경계했었습니다. 약국에서 마주치면 불편해서 돌아 나왔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숨을 참았었지요. 그런데 사람 일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호치민에서 한국인들이 같은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지요. 한국이 잘 살아야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도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진짜 남 일 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제는 뉴스를 보는 게 무섭습니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호치민 내 학교들의 휴교령도 종료되어 학교에 가게 된다면 아이는 안전할까요? 혹여나 한국 아이라는 이유로, 최근에 한국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겪지나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으로 대한민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렇게 코로나 19로 또다시 전세계의 주목을 받네요. 코로나가 한국의 전부가 아닌데...


3.1절. 이렇게 조용히 지나가는 것도오늘이 처음이겠지요. 코로나 19의 종식을 소망하며 외쳐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창밖을 내다봅니다. 도로 위의 오토바이들이, 자동차들이 나와는 아무 상환없는 듯한 일상인 듯 낯설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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