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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05. 2020

죄송하지만, 행복합니다.

오명과 차가운 시선 속에서...

호치민에 있는 어느 국제학교 한국 엄마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중국어 온라인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낸 퀴즈가 발단이었습니다. 


문제 : 코로나가 가장 심한 나라는 어디인가? 

보기 : 이탈리아, 일본, 한국


출석 확인용 퀴즈인데, 정답을 '한국'으로 해야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의도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냈을까요? 중국인 교사가 이 시국에 이런 문제를 냈다는 것도 민감하지만, 보기에 모든 발단이 된 중국은 있지도 않습니다. 한국에 덤터기 씌우기인가요. 일개 교사가 이 정도인데, 요즘 뉴스를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집니다. 학교에는 분노한 수많은 한국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교장이 한국 학생 부모들에게만 사과 메일을 보냈다고 하니 더 씁쓸할 뿐입니다. 

집에 아파트 관리 직원과 공안(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공항에서 검역신고서를 쓰고, 아파트 내부 의료 신고서를 썼는데, 보건소에 제출할 서류를 또 작성했습니다. 내용은 동일합니다. 국적은 어디냐, 최근 14일 내에 한국이나 중국을 방문했느냐, 한국에서 대구, 경북 지역을 방문했느냐, 발열이나 다른 증상이 있느냐 등등. 입국한 비행 편과 좌석 확인을 위해 비행기 티켓까지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어디에서 지냈는지를 구체적으로 묻고, 대구에 다녀왔는지를 또 한 번 물었습니다. 자가 격리 동의서에도 사인했습니다. 앞으로는 격리 기간 동안 8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사진을 찍어 담당자에게 보내야 합니다. 

결론은 정식 자가 격리 통보입니다. 집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고, 창문은 자주 열어 환기시키라고 했습니다. 한국에 다녀오지 않은 남편에게는 꼭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고, 손을 자주 씻으라는 지침도 내렸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제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가장 먼저 전염될 사람이 남편일 텐데 2주간 같이 격리를 시킨다거나, 따로 생활을 하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지만 남편의 외출은 괜찮답니다.

공안이 찾아오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던 터라 혹여 강압적으로 대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안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같이 온 경비 직원이 제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뻔히 보이는 동의 없는 몰카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사진을 한 장 찍겠다 라고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불편합니다. 왜 그 자리에서 항의하지 못했을까요. 서류 작성하고, 제복을 입은 공안을 마주하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 말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서니 후회가 됩니다. 

격리 동의서와 함께 받은 서류를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정부에서 보낸 격리 안내문이었는데, 같은 아파트 안에 자가 격리 중인 한국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입국일과 격리 기간이 모두 적혀 있었습니다. 저와 제 아이의 정보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다른 자가 격리자들도 제 정보를 다 보겠지요. 사회주의 국가는 이런 건가 봅니다. 10년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무례함에 당혹스럽습니다. 

 

어제는 담임선생님과 아이의 1:1 화상 수업이 있었습니다. 영상통화를 하며 같이 수학 문제를 풀고, 과제를 같이 확인하고, 아이가 텍스트를 읽으면 선생님이 다시 한번 읽어주며 짚어주었습니다. 엄마와 공부할 때는 징징거리고, 5분을 못 참고 몸을 비틀어대던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는 한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중하며 공부하는 모습이 신통방통했습니다. 이래서 학교를 보내고, 돈 들여서 학원에 보내는가 봅니다. 가고 싶은 학교... 보내고 싶은 학교... 그런데 갈 수 없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오늘도 오전에 아이와 학교 과제를 했습니다. 오늘 저는 프랑스어로 다각형은 polygone이라고 하고, 꼭짓점은 Sommet, 면은 côté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엉터리 발음으로 텍스트를 같이 읽으며 그럭저럭 매일의 과제를 해나가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합니다. 

학교 문제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집에서 아이의 학교 수업을 같이 해보니 프랑스 교육이 꽤 괜찮다는 것을 느낍니다. 정답도 중요하지만, 문제 풀이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아이도 텍스트를 읽으면서 중요한 단어에 색칠을 하고, 문제의 정답을 유추하게 한 단어에도 색칠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아이의 몰랐던 공부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정도가 이번 휴교령의 손에 꼽을 장점이랄까요... 


호치민 라이프. 격리 중에는 격리된 상황 외에는 별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90 스퀘어 남짓한 공간이 2주 동안 저와 아이에게 주어진 세상의 전부여서 그런가 봅니다. 한국에서 보낸 2주도 최소한의 외출만 했으니 격리 생활만 3주째가 되어갑니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봐도 조용하게 흘러가는 다른 세상 같고, 친구들이 외출 소식마저 별나라 이야기 같기만 합니다.

격리가 되고 나니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휴교령이라 해도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비슷한 상황인데,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제가 안쓰러운가 봅니다. 고기도 갖다 주고, 반찬도 갖다 줍니다. 라면과 빵을 사다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스콘이 너무 먹고 싶다 하니 그 말이 계속 걸렸다며 이틀 동안 스콘 파는 집을 수소문해서 사다 준 친구도 있습니다. 다시는 '스콘'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네요. 아파서 격리된 것도 아닌데, 주변의 걱정과 안부를 받고 있으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늘 친구도 별로 없고, 외롭다 생각했는데, 요즘은 행복한 마음에 웃음이 배시시 납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힘든 상황에서 깨닫습니다. 


어서 빨리 대한민국, 그리고 해외에 사는 모든 교민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오명과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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