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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14. 2020

격리 해제, 다시 일상입니다

코로나 증상에 전세기로 입국한 베트남 재벌

드디어 자가 격리가 해제되었습니다. 14일의 격리 기간을 매일 손꼽아 기다리고 맞이한 격리 해제의 아침. 하지만 15일을 채워 하루 더 격리해야 한다는 믿을 수 없은 비보에 잡았던 두 건의 약속을 취소해야 했고, 폭주하는 아이를 달래야 했습니다. 진작 서류를 살펴봤어야 했는데, 격리 기간이 15일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진짜 격리 해제일 아침. 아파트 1층 리셉션에 내려가 격리 해제 확인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마지막이니 건강 상태 문진이라던가, 발열 체크 정도는 받을 줄 알았는데, 세큐리티 직원이 내미는 서류에 사인하는 것으로 격리가 해제되었습니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제 너는 자유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요?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형식적인 격리 해제 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출입카드가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요. 격리 기간 동안 제 출입 카드를 정지시켜둔 모양입니다. 다시 리셉션에 가서 카드 정지를 풀고 나서야 온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한 번에 일처리가 끝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격리는 베트남 정부로써는 필요한 절차였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격리 기간 동안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던 바깥 풍경 속으로 발을 내디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한 일상으로 금세 돌아갑니다. 하긴 겨우 한 달입니다. 1년 만에 가는 한국도 낯설지 않은데, 한 달 만에 마주하는 호치민이 낯설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래도 몇 분 동안 서서 가만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습니다. 일상이 주는 평범함과 안정감의 소중함. 여전히 격하게 뜨거운 호치민의 날씨마저도 반가웠습니다.


오전 온라인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미리 싸 둔 배낭을 둘러매고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습니다. 하루 종일 흥분 모드로 진정한 자유를 열망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뭇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합니다. 그와 달리 저는 생각처럼 새롭고 흥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약속이 있어 스타벅스에 갔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 커피를 주문하면서 평소처럼 머그컵에 달라고 하니, 직원이 난처해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1회용 컵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주 간의 공백이 이런 작은 틈새에서 느껴집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베트남의 공유차량 어플 Grap으로 오토바이 택시를 불렀습니다. 오랜만에 스피드를 느껴보고 싶었달까요. 물론 속도는 전혀 빠르지 않습니다. 안.전.속.도. 그래도 오토바이는 자유의 상징과도 같으니 격리 해제의 날에 딱 어울리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격리만 끝나 봐라!! 맛있는 거 죄다 먹어줄 테다!! 했지만, 자가격리를 하던 때와 벌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는 빵, 점심은 카레, 저녁은 떡만둣국. 익숙하게 젖어든다는 게 이런 건가 봅니다. 식구들 모두 외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대신에 내일은 친구 부부가 격리 해제 파티를 열어준답니다.

"메뉴가 뭐든 우리 집만 아니면 돼. 이젠 우리 집 식탁만 봐도 징글징글하거든."


한국의 코로나 19 상황이 31번 확진자로 급변했다면, 베트남에는 17번 확진자가 있습니다. 영국과 베트남에 철강회사를 운영하는 재벌의 딸이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쇼에 참석하고, 런던을 거쳐 하노이에 들어왔는데, 그 후로 17번 확진자의 가족, 지인들은 물론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외국인 여행자들까지 속속 확진되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여행객이었던 확진자들이 다녀간 베트남의 대표 관광지 하롱베이마저 폐쇄됐었다고 하네요. 런던에서 17번 확진자의 파티에 참석했던 여성은 코로나 증상에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해, 런던에서 개인 전세기를 타고 호치민으로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니 베트남 재벌의 수준이 놀랍기도 합니다.


호치민시에서는 모든 초, 중, 고등학교에 대한 휴교령을 4월 5일까지로 연장했습니다. 최대한 차단하는 것만이 이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겠지요. 휴교 연장 소식이 더 이상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베트남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5월까지는 휴교할 것이라는 뉴스도 있다 하니 마음  단단히 먹고 견뎌야겠지요.  아, 다음 학기 학비 통지서를 받으면 마음이 달라지려나요. 이럴 땐 한국의 무상교육이 부럽습니다.


내일은 정말 공원을 걸어봐야겠습니다. 낮에는 햇볕이 뜨거우니 밤공기를 맞으며 산책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좀 더 이 자유가 실감 나겠지요.


여행자 버스를 탈 때도 발열 체크. 출처 : Tuoi 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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