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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28. 2020

엄마 좀 그만 불러줄래?

코로나에 갇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아이가 부활절 방학을 하자마자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토요일에 예약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 말이죠. 며칠 전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아... 이게 나의 원래 일상이었구나 싶은 생각에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살아가고 있을 평범한 일상이 아주 많이 그리워졌습니다. 건강검진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한국으로 가는 길도 막혔을뿐더러, 다시 컴백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베트남 입국이 가능하더라도 시설 격리가 된다면 아직 어린아이와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언제 다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침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깨워 밥을 먹여 부랴부랴 학교 셔틀버스에 태우던 시간들. 내일은 토요일이라 학교에 안 간다며 좋아하던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조용히 작업을 하던 나만의 시간. 아이가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하던 간식 시간. 매일 밤 내일 학교 가야 하니 얼른 자라고 재촉하던 잔소리까지. 모든 일상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요즘은 다정다감한  말보다는 잔소리가 늘어갑니다.  24시간 집에 붙어있는 아이는 이제 자꾸만 집안의 여러 살림들을 꺼내어 자기 놀잇감인 양 신났습니다.

“그건 또 어디서 꺼냈니”

“장난감 아니야. 갖다 놔.”

“엄마 좀 그만 불러줄래?”

자꾸만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심심해도 부를 사람은 엄마밖에 없는 아이 입장을 백번 천 번, 아니 그 이상도 이해하지만, 하루 종일 불러대는 “엄마 엄마 엄마”에 지치는 마음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던, 엄마라고 불리고 싶다고 했던 마음들은 어디로 가고, 잠깐만이라도 떨어져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여전히 아이를 많이 사랑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제 마음을 참 못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애들은 집에 있고, 난 집 앞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어.”라는 친한 언니의 한 마디에 위로를 얻었습니다. 외동을 키워서 이렇게 힘든가 싶기도 했는데, 아이 셋을 키우는 언니도 폭발 직전에 도망 나왔다니 이상하게도 안심이 됩니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옆집에라도 가서 사람 얼굴 보고, 커피 한 잔 하며 잠시나마 숨통 트이고 싶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습니다. 호치민에 폐쇄되는 아파트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방어를 위해 베트남 정부는 의심환자가 한 명만 나와도, 아파트 전체를  폐쇄시키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옆집에서 커피 마시다가 격리되어 집에 못 돌아오는 사태가 생길지 모릅니다. 이미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교민 소식을 통해 알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집에 놀러 오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언제, 어느 아파트가 폐쇄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출입이 통제된 라인이 있어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기도 합니다. 이미 한 번의 자가 격리를 겪었기에 ‘설마...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 집에 있다가 아파트 폐쇄 조치로 격리가 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배달받는 것도 가능하고, 혹시 몰라 생필품과 먹거리를 넉넉하게 사두었습니다. 답답하지만 내 집에 가만히 머물면 됩니다. 하지만 격리된 장소가 내 집이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아파트 폐쇄 조치에 열외는 없습니다. 여권과 거주증 검사를 하러 갔던 경찰도 빠져나오지 못했다니 그저 그 안에 있던 모두가 폐쇄 조치가 끝날 때까지 갇혀버리는 것이지요. 보름이나 남의 집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집 앞에서 주고받을 것만 건네주고는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현재 베트남의 확진자 수는 150명 가까이 됩니다. 병원 시설은 열악하지만, 입국 금지와 입국자 전원 시설 격리라는 초강수로 증가폭이 크지는 않은 듯합니다. 최근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돌아오는 유학생과 베트남 교포들 중 확진자가 늘다 보니  베트남 정부는 해외에 있는 자국민의 입국도 금지시켰습니다. 해외 교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보내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반대입니다. 현재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베트남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 특수한 상황이... 바로 삼성과 LG겠지요.

자가 격리가 해제된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보냅니다. 그나마 입주민에게만 개방된 공원으로 한 번씩 저녁에 바람 쐬러 갔는데, 이제는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식당도 문을 닫고, 최소한의 교통편만을 이용할 수 있고, 타 도시로의 이동도 안 됩니다. 이 더운 나라에서 에어컨을 틀지 말고, 틀더라도 27도로 맞추라는 지침까지 내려졌습니다. 집 앞에서 뛰어노는 것조차 허용이 안 됩니다. 답답함이 몰려옵니다. 이 시기의 불편하고 우울한 마음을 ‘코로나 블루’라고 한다지요. 그 말 또한 위로가 되는 건 저만이 처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베트남에서 코로나 치료 비용이 8700불 청구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타국에 살고 있으니 불안한 이야기들만 더 들려옵니다. 생각도 자꾸만 코로나에 밀리는 듯합니다. 코로나가 일상인지, 일상이 코로나인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려해도 코로나 일상 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머리가 멈춘 듯합니다.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살아가겠지만, 코로나를 일상에서 밀어내고 빼앗긴 일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현재 호치민의 많은 것은 멈추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생각만은 일상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나의 일상을 찾아야겠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백번 천번 불러도 웃으며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일상으로... 일상으로... 일상으로...

흔하고 재미없다 여겼던 날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매일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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