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거실로 출근한다

1인 작업실에도 룰은 있다

by 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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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서 월차를 냈다. 아직 작업실에 그럴듯한 이름도 없는, 남편은 여전히 존재를 모르는 작업실을 오픈했지만 처음 '개인 작업실'을 계획할 때부터 몇 가지 기본적인 룰을 정해두었다. 흐트러질 수 있는 마음을 붙들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1. 작업실 출근 시간에 맞춰 무조건 출근한다.

2. 약속은 한 시 이후로 잡는다.

3. 부득이하게 오전 작업시간을 못 채우면 오후에 시간에 일한다.

4. 일하는 시간에 사적인 카톡은 삼간다.

5. 진행 중인 작업의 마감 시한을 정한다.

6. 월차는 한 달에 한 번만 쓴다.


이 룰 덕분에 혼자 작업하는 공간이지만, 소속감도 느끼고 일의 열정도 느끼고 있다. 차곡차곡 글도 써 내려가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엄마라는 이름이 아닌 '나'로 세상에 뛰어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취직한 기분까지 드는 건 오버일까? '왜 진작...'이라는 아쉬운 생각도 들지만, 뭐 어떠랴 이제라도 시작인 것을.

작은 거실에서 일하지만, 오히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 경제도 배우고, 돈도 배우고, 글에 대해서도 배운다. 그동안 참 무지하게 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1인 작업실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작업실을 오픈하겠다고 결심한 내가 한없이 기특하다.

결혼을 하고, 호치민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느슨해져 있었다. 남편이 다 알아서 할 거라며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대 때 했던 것처럼 다시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차라리 안 가겠다며 덜컥 무서워졌다. 그때보다 지금 더 영어를 잘하는데도 말이다. 남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 듯 길들여져 있었다.

이제 결혼 10년 차.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심한 과도기를 앓고서 엄마와 아내로만 채워져 있던 나에게 내가 사랑하는 '작가'라는 자리를 돌려주고 싶어 졌다. 곁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작업실을 오픈하면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삶의 태도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시간에 맞춰 작업실에 앉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방과 주방까지 집안이 훤히 눈에 들어오는 구조. 여기저기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작업하는 동안에는 눈을 질끈 감는다. 조만간 대청소를 해서 더 많이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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