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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Sep 30. 2021

금쪽같은 내 시간

나는 왜 이렇게 용기도 없고,
겁만 많고
열정은 하루 만에 사그라들까?

잘하고 있냐는 친구의 연락에 이렇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이건 어떨까?"하고 며칠 열심히 준비하다가 벽에 부딪히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척척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이 밝는다. 아이가 일어나면서 집은 분주해진다. 아침밥을 준비하고, 잠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오전 수업이 끝난다. 오후 수업 전에 해야 하는 학교 과제를 하게 하고, 그때부터 점심 식사 준비를 한다. 중간중간 아이가 부르면 응대해줘야 하고, 아이가 너무 조용하면 한 번씩 방에 볼 일이 있는 듯 들어가 수업과 학업 태도 점검도 해야 한다. 손이 빠르지 않으니 주방의 늪에 들어가면 아무리 간단하게 준비를 해도 최소 한 시간은 주방에 머무르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 싶은 주방의 늪이다. 남들은 팬 하나로 요리가 충분하다는데, 주부 12년 차가 된 지금도 매 끼니 밥할 때마다 엉망이 되는 주방은 내 영역이 아닌 듯한 깊은 의심이 든다.

아이의 오후 수업이 시작되면, 나도 수업 준비를 한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 같은 오후를 보내다 보면 아이 학교 수업이 끝난다. 오후 간식을 먹고, 같이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하고, 외동아이의 친구 역할까지 해낸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엄마, 선생님, 친구 역할이 모두 내게 떠맡겨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쪼개 내 수업까지 마치고 나면 늦은 저녁 시간이다. 또다시 주방의 늪에 빠졌다가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아무리 열정 가득 품고 도전해도 이런 일상에서는 금세 열정이 사그라들고 만다. 집중해서 생각할 틈이 없으니 "내가 뭘..." 하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남들도 다 하는 생각일 거야"를 거쳐 "역시 나는 아직 부족해" "나 같은 게 무슨..."이라는 좌절로 끝나버리는 것들이 많았다.  


여기까새벽이라는 틈새를 찾기 전까지의 일과다.

요즘 나의 하루는 이분법처럼 둘로 나뉜다. 새벽과, 아이가 일어나서 잠들기까지의 두 개의 시간. 나 홀로 깨어 있는 평화로운 새벽을 보내다가, 아이가 일어나면 그 순간부터 시간은 분주하게 흘러간다. 같은 일상 같지만 전혀 다르다.

새벽에 주어지는 3시간 동안 낮에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얼마 전까지는 새벽마다 공부해서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원칙적으로는 한국에 가서 오프라인 시험을 봐야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시험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도전할 수 있었다. 남들은 쉽게 따는 자격증이라는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도 합격하고 나니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다시는 시험이라는 걸 또 도전하나 봐라!' 했는데, 요즘 다시 어떤 공부를 해볼까 기웃거리게 되는 걸 보면 자격증 하나로 얻은 성취감이 꽤 높은 듯하다.

 시간은 눈에 보이는 일들로 조급하고 분주하지만, 새벽은 여유롭다.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그런 특별한(?)  없는 날이라고 해도 걱정되지는 않는다. 고요한 새벽 시간에는 신기하게도 웬만한 걱정과 불안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니 대부분의 하루는  평온한 기분과 마음이 이어진다.


새벽에 마무리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낮시간에 이어서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시간은 변함없이 바쁘다. 새벽의  모습과  시간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 보니, 서로 다른 현실 세계를 살고 있는  같다는 생각도 한다. 새벽에 재미있게 읽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책은 다음  새벽까지  관심   받지 못하기도 하고, 종일 아이디어만 생각할  같던 열정은 머릿속에서 까마득하게 지워진다.  시간의 나는 여전히 불안해서 새벽의 다짐은 모두 잊고 의지를 상실하기도 한다. 새벽의 내가 진짜 내가 맞나 싶다. 그럴  종종 친구에게 푸념 섞인 말도 한다. "엉덩이   붙여보지 못하고 바빴는데, 나를 위한 1분은 없었어. 시간 도둑이 있나 ."  억울하기도 하지만, 괜찮다. 푸념은 거기까지로 끝내고 얼른 내일을 위해 거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면 그만이다. 낮은 분주할지언정, 나만이 깨어있는 새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집안일에 치여 사그라들었던 열정도 새벽이면 다시 채워지니 새벽을 기다릴 수밖에.

새벽의 여유를 맛보면, 포기하기 쉽지 않다.

열정이 없다면, 강제로라도 작은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과정은 괴롭지만, 성취감은 투자한 시간과 고생 이상으로 돌려받는다. 눈에 보이는 합격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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