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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Oct 01. 2021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다네요

금요일이다.

예전에도 그랬던  같은데, 지금도 금요일이 좋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수만 있다면 수업을 잡지 않는다. 주말에 일할 지언정, 금요일은 놀고 싶은 날이다. 특별한  없지만,  주간 무겁게 짊어지고 달려온 시간들의 쉼표 같은 날이다. 매일 아이의 학교 온라인 수업을 신경 쓰는 것도 금요일이면 이틀은   있으니, 금요일은 아침부터 한결 마음이 가볍다. 주말보다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는 금요일이 좋다. 여행 가기 전 짐 쌀 때 기분 좋은 것처럼 말이다. 아침부터 '마음만' 불타오르는 불금.

설렘에 들뜬 아침 6시에 아이가 씨익 웃으며 거실로 나왔다. 요즘 나의 기상 시간을 계속 물으며 같은 시간에 깨워달라는 아이에게 "어린이는 더 자야 돼." 하며 단호하게 거절했건만, 엄마의 은밀한 사생활이 궁금했나 보다. 고요한 나만의 새벽 놀이터에 불청객은 요란하게 아빠도 깨우더니 방에서 놀고 있겠다며 다시 들어갔다. 오늘 새벽은 포기하고, 봉쇄도 풀렸겠다 같이 공원 산책이나 가는 게 좋겠다 싶어 하던 것을 마무리하고 마무리하고 방에 들어가니 어느새 아이는 다시 쿨쿨 자고 있었다. 아쉬움 반, 안도감 반.

하던 일은 이미 접었으니, 책을 집어 들었다. 아껴 읽느라 오늘에서야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양희은 선생님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아하고 존경할 줄 알았으면 예전에 만났을 때 더 잘해드리고, 살갑게 말도 좀 건네보고, 선생님의 주옥같은 대답도 들어볼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선생님은 나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음악 프로그램의 작가로 한 번 만나 뵈었다. 그때는 왜 그리 선생님들이 어려웠는지. 깍듯하게 인사드리고, 녹화 시간까지 편안하게 지켜드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대기실 문 앞에서는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며 오두방정을 떨었을지언정. 그럼에도 그분의 아우라와 따뜻한 미소를 기억한다. 무대 뒤편에서 노래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두 손 꼭 마주 잡고 노래에 빠져들던 나를 기억한다.

나에게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할머니가 두 분 있다. 미국 할머니인 모지스 할머니, 한국의 할머니인 박혜란 선생님. 그리고 오늘 한 분이 더 추가됐다. 양희은 선생님. 박혜란 선생님과 양희은 선생님을 내가 감히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고 닮아가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화가 모지스의 그림을 보게 되었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이 화가가 미국의 국민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시골의 평범한 주부로 평생을 살다가 75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면서 '이젠 다 포기야' '너무 늦었어'하던 나에게 그 어떤 책보다도 현실적인 자극이 되어 주었다. 할머니 덕분에 그림에는 재능 없는 내가 컨버스에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고, 그려보니 내 솜씨가 생각보다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두들 내게 '괜찮아', '용기를 내봐', '뭐 그러면 또 어떠니'라고 푸근하게 말해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아직 늦지 않았음을.

오늘도 용기 내는 그런 날. 그런 금요일.


오늘의 새벽 예찬.

책을 통해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새벽을 통해 책을 읽을 시간을 얻었다.

새벽과 독서는 찰떡궁합이다.


분명히 좋았던 그날. 산책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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