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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Jan 04. 2019

베를린 사람들을 닮은 공간들

풍부한 목재와 식물, DIY의 문화공간/ 크룽커크라니히를 가보았다.


역시 어딜가나 제일 재밌는 건
사람 구경


어디를 가나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베를린에서도 사람들 구경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특히 나는 동네 사람들 구경이 재미있었다. 관광지나 중심가의 젊은이들의 패션이나 분위기는 사실, 한국의 그것과 비슷해 보여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패션 트렌드가 글로벌한 것인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정말 트렌드세터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면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아기와 엄마 아빠들 등등 동네 사람들의 패션은 그야말로 간소하다. 넉넉하고 오래 입은 옷을 몸에 툭 걸치고 다니시는데, 그게 참 편해 보이고 좋았다.  



편안함이 그들의 취향


그런 편안함은 비단 옷차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 편안함은 이들의 생활습관,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여, 꽃집이 많이 보인다. 직접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도 많아 도시 곳곳에 정원과 어반 가드닝 공간이 있다. 집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고 수리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이와 관련된 생활공구 대형마트 체인 '바우하우스 BAUHAUS'도 쉽게 볼 수 있다.







베를린스러운 공간들은
그들처럼 '편안한' 곳이었다.  


이런 스타일은 상업공간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물론 쨍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가게도 있었지만, 그런 곳들은 한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행자의 신분이다 보니 정해진 기간 동안, 베를린에서만 볼 수 있는, 베를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가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가 보면, 어김없이 직접 키우는 듯 보이는 플랜드 박스가 배치되어 있고,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목재 가구들이 보였었다. 완벽히 세팅된 공간보다는, 오래 사용하고 관리하여, 좀 건드리고 만져도 멀쩡할 것 같은 투박한 공간들이었다. (ex. 홀츠 마크트(Holzmarkt)마크트할레노인(Markthalle Neun))


목재와 식물로 풍성하게 채워진 공간이었다. 자연스러운 느낌! 

직접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공간이었다. 조금 엉성해 보이지만 사용하기에는 불편함 없는 정도였다.

그들만의 서사가 있었다. 개발과정부터 관리운영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직접 만들어 일군 스토리. 그 서사는 일반적인 부동산 개발과정과 달랐다. 이해관계자도 많았고, 합의과정에만 몇 년이 걸린 곳도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직접 만들고, 가꾸어 나가다보니, 어느새 그 공간이 만드는 사람들과 닮아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이야말로, 여행자인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공간 "베를린스러운 공간"이었다. 







편하게 툭 걸터앉을 수 있었던
대안문화공간, 크룽커크라니히  


베를린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던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노이쾰른의 크룽커크라니히(Klunkerkranich)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노이쾰른은 베를린 남동쪽에 위치한 동네로 자유분방한 예술가들과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최근 독특한 가게와 갤러리들이 생기면서, 인기가 많아졌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크룽커크라니히는 라트하우스 노이쾰른(Rathaus Neukölln/ 노이쾰른 구청사) 전철역 앞 쇼핑몰 주차장에 위치해 있다.


라트하우스 노이쾰른 역에서 나오면 쇼핑몰(노이쾰른 아케이드)이 보인다.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단 쇼핑몰을 찾아 들어갔지만, 크룽커크라니히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표지판을 아무리 보아도 몇 층에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일단 옥상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다가 주차장 안쪽에 위치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2-3개 층을 더 올라가 드디어 맨 위층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려서도 어느 쪽에 가야 하는지 헤매다가, 사람들이 한두명식 걸어 나오는 쪽으로 가다 보니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면 만나게 되는 주차장
사람들이 나오는 쪽으로 가다보니 찾아낸 입구/ 이렇게 꼭꼭 숨어 있었구나.




목재와 식물, DIY, 그리고 멋진 전망으로 완성되는 공간

삭막한 주차장 공간을 헤매다 들어갔더니 너무나도 멋진 공간이 펼쳐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맥주 한잔 씩을 하며 날씨와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실내 펍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받아 들고,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직접 만든 듯한 실내 펍 건물, 테라스의 의자와 테이블,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플랜드 박스 등으로 공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목재와 식물, DIY의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도 만들어져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긴 베를린 어디를 가든 아이들의 공간이 확보되어 있긴 했다. 이곳도 다를 게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방문해도 좋을 곳, 환대받는 곳이었다.

한쪽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목재로 구조물을 세우고 있었다. 또 다른 공간을 만드나 보다. 이곳도 이렇게 뚝딱 뚝딱 직접 만들고 관리하는 공간이었다.


삭막한 주차장을 지나 들어오니, 이런 멋진 공간이 뙇.
한쪽에서 설치물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모래사장, 장난감 등



사실 이런 공간의 느낌은 지난번 홀츠마크트에서도 느꼈던 분위기였다.

다만 홀츠마크트는 슈프레 강변의 풍광이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네 풍경이 있었다.

베를린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만든 듯한 엉성한 공간과 식물들, 그리고 멋있는 풍광이 공통적으로 보였다. 목재와 식물, 그리고 DIY의 방식은 비슷하더라도,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 즉 동네의 분위기가 다르다 보니 각 장소마다 특색 있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비어있던 옥상 주차장, 루프탑 문화공간이 되다.

원래 이곳은 항상 비어있던 공간이었다. 쇼핑몰 옥상 3개 층이 주차장이었는데, 동네 지하철역 앞에 위치해 있다 보니 자동차를 타고 오는 이용객보다는 걸어서 오는 이용객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특히 맨 위층의 옥상 주차장은 항상 텅 비어있었다.(내가 방문했을 때도 주차장 3개 층 전부 거의 비어있었다. 아마도 설계 당시, 과한 주차수요 분석 덕분이지 않을까)


크룽커크루나히를 설립한 창업자가 우연히 이 쇼핑몰에 왔다가, 비어있는 주차공간과 멋진 전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로 팀을 만들고, 이 유휴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하여 대안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크레인으로 목재 판자를 옥상까지 들어 올려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관련 동영상 


고양이가 올라앉은 실내 펍 건물 & 야외 테라스/ 실내보다는 야외에 사람들이 많았다.


2013년부터 운영하였고, 베를린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곳은 펍과 레스토랑 부터 클럽 디제잉, 도시텃밭, 독서모임, 마켓 등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문화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클러빙과 파티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단위 방문객, 모래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오후에 차나 커피를 마시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지역에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출처1

출처2







한국사람들을 닮은 공간은 어디일까? 


그러고 보면 홀츠마크트나 크룽커크라니히같은 분위기의 공간들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 비슷한 분위기의 공간들이 15년 전, 내가 자주 가던 홍대에 많았었다. 홍대 주차장길에 있었던 펍 '로베르네'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다. 연트럴 파크 초입쯤에 있었던 '레게 치킨'은 곧 쓰러질 것 같은 1층 건물에 투박하게 들어와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진 곳들. 그곳들은 DIY의 공간이었다. 주인들이 직접 만들고 꾸민 공간이었다. 다소 엉성하고 서투르지만 주인들의 개성이 느껴지고 이야기가 있는 곳들이었다. 


요즘 뜨는 동네들도 다르지 않다. 지역의 역사가 느껴지는 오래된 곳들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는 익숙한 동네. 뜨는 가게들도 다르지 않다. 가게 주인만의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고, 시간의 켜가 보이는 가게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주인을 닮은 공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베를린에서의 투박한 공간에는 편하게 즐기는 손님들과 그 옆에서 뚝딱뚝딱 무언가 고치고 만드는 주인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어쩐지 나는 편했다. 그냥 걸터앉거나 기대어 누워도 될 거 같은 분위기였다. 

한국에 온 요즘도 나는 세련된 공간보다, 오래되고 편안한 동네를 구경하러 다닌다. 세련된 공간에 가면 왠지 모르게 세련된 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불편하다. 오히려 이것저것 주인이 손수 만들고 가꾼 공간이 편하고 정이 간다. 지나치게 사람이 몰리는 곳보다, 적당히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동네를 보는 것이 더 재밌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취향이 서서히 묻어나, 공간과 사람이 서로 닮아가는 곳. 그런 공간들이 더이상 사라지지 않았으면, 그리고 앞으로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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