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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Jan 11. 2019

베를린이
폐철도를 활용하는 방법

아무것도 하지 않기.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기.  

심심할 때 종종 구글맵을 들여다봤었다. 베를린에서 머물던 언니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의 공원을 찾아보곤 했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했던 곳이 자전거로 약 20분 걸리는 '자연공원 쉬트게렌데(Natur-Park Südgelände)' 였다. 자유롭게 어디나 드러누워도 괜찮은 여느 베를린의 공원들과 달리, 야생의 자연환경이 보존되는 구역이 포함되어 조심스러워 보이는 곳이었다.

 


자연공원 쉬트게렌데(Natur-Park Südgelände)를 가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 도착해 보니, S반 Priesterweg 역을 통해 입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역 앞에 자전거를 메어놓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공원과 달리 입장권을 구입해야 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입구 앞 자판기에 1유로를 투입하여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안내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나서야 공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공원 입구 모습/ 티켓 자판기가 있다.



드디어 입장


들어가자마자 쨍하게 노란 건물벽과 멀리 높이 솟은 녹슨 철골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녹색의 나무들과 파란 하늘 덕분일까. 녹슨 산업유산과 무성한 자연환경은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까.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파란 하늘과 함께 더욱 예뻤던 입구.  

인상적인 노란 벽과 멀리 보이는 녹슨 급수탑



야생의 자연이
근대산업유산을 정복했다.


공원 안으로 들어오니,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폐허가 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기둥, 대들보, 뼈대만 남아있었다. 뚫려 있는 천장과 벽 사이로 파란 하늘과 무성한 나무들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온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과거 어느 시대에는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힘없이 그저 서 있다. 

과거에는 자연의 땅을 정복하고 들어왔을 이 근대산업의 구조물이, 

이제는 어이없이 자연의 힘에 정복당해 있었다.  





마치, 인간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들어온 기분


공원 입구 근처에 콘크리트 구조물, 랜드마크적인 녹슨 급수탑, 과거 오피스로 쓰였을 법한 카페 건물들이 모여 있었고, 이 것들을 지나 들어가자 야생의 밀림 같은 짙은 자연이 펼쳐졌다. 이 공간의 주인은 자연이고, 나는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을 구경할 수 있게 잠깐 허락받은 방문객이 된 것 같았다. 자연 속에 폭 파묻혀 평온하면서도, 괜히 내가 해라도 입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다른 방문객들도 서로서로 조용히 조심하는 눈치였다. 



산업유산이 아닌, 자연이 주인공인 공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보호하려는 듯, 공원 내 통로는 공중에 약간 떠 있었다. 무성하게 난 잡초들 사이로 희미하게 과거의 철도 선이 보였다. 과거에 기차들이 드나들었을 곳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숲이 되어 있었다. 녹슨 철제 프레임의 설치물들이 중간중간 눈에 띄었다. 작품처럼 보이기도, 그저 버려진 근대 유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뽐내지 않았다. 그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 속에 '묻혀' 있었다. 


공원 내 보행통로/ 잡초 사이로 철도선이 보인다.
야생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대
과거에 기차들이 드나들었을 철도 사이로 빼곡하게 나무들이 자라 있다.




원래 철도조차장이었다는 이곳, 야생의 자연이 되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세기 말 철도조차장으로 건립, 1952년 폐쇄

1889년, 이 곳은 기차가 모였다가 이동하는 '템펠호프 철도조차장'이었다. 근대산업의 발전으로 운송과 여객 열차 수요가 증가하면서, 1930년까지 몇 차례 확장을 하였고, 1931년에는 철도운영 공장도 건설되었다. 베를린 대부분의 도시 이야기가 그러하듯,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템펠호프 철도조차장 서쪽 구역의 주요 수송처였던 베를린 안할터 기차역(Berlin Anhalter Bahnhof)이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폐쇄되면서, 철도조차장의 서쪽 구역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게 되었다. 1952년 조차장은 폐쇄되었고, 이후 동쪽 구역이 동독에 의해 제한적으로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폐쇄 후 방치되면서, 야생의 자연이 된 철도조차장 
1999년 공원 일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 2000년 자연공원으로 오픈 

1995년 원래 도이치반(독일 철도 회사)의 소유지였던 조차장 부지는 도이치반의 다른 개발사업 환경부담금 명목으로 베를린시에 기부되었다. 시유지가 된 조차장 부지는 베를린의 도시녹지를 개발하고 관리 운영하는 공기업 그린베를린(Grün Berlin)이 관리하게 되었고, 알리안츠 환경 파운데이션(Allianz Environmenta Foundation)으로부터 공원관리의 재정적 원조를 받게 되었다. 

1999년 부지면적 총 18헥타르 중 3.4헥타르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도시 내 유휴공간이 생겼고, 그것을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단순한 사례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하나,

도시내 유휴공간, 개발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1970년대 공공에서 이곳을 화물용 철도조차장으로 이용하는 개발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주의자들은 이곳이 희귀종과 멸종위기종 동식물 군의 서식지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기존의 화물 조차장이었던 덕분에, 수많은 외래 동식물종이 이 지역에 들어왔고, 1952년 폐쇄된 이후로 인간의 손이 닿지 않게 되면서, 자연 생태계가 회복된 것이다. 자연주의자들과 지역주민들은 이 지역의 놀라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시민발의를 제안했다고 한다. 결국 1989년 개발계획은 철회되었고 1999년에는 일부 구역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공공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눈,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연대가 만들어낸 결과 


이들의 이런 행동은 당시 시대상과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사회는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환경보호는 관심 밖이었고, 68 혁명의 여파로 60년대 말이나 되어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환경의식이 높아졌으며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산되어 녹색당까지 창당하게 되었다. (참고 : <68, 세계를 바꾼 문화혁명>, 오제명 외) 

 

또 다른 배경은 '커뮤니티 가든'이라는 문화의 영향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차장 부지는 남북으로 좁고 긴 형태이며, 서쪽으로 베를린 남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텃밭'에 인접해 있다. 이곳에서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비교적 다른 시민들에 비해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로서, 나의 텃밭 근처에서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이는 활동이 있다면, 지지하고 시민발의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나의 추측) 

 




둘,

야생의 자연과 녹슨 문화유산의 공존이 아름다운 공원,

어떻게 이런 수준의 공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걸까?


공원을 통합적으로 개발/관리하는 전담조직,
그리고 야생 속 근대유산을 잘 이해한 예술가 그룹


조차장 부지가 시유지가 되면서, 이 구역에 대한 관리는 그린베를린(Grün Berlin)이라는 공기업이 맡게 되었다. 그린베를린은 베를린 도시공원의 설계, 개발, 관리/운영까지 통합적으로 다루는 곳으로 현재 5개의 회사를 둔 '그린베를린그룹'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전문가 그룹은 베를린의 수많은 공원들을 지역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콘셉트로 개발하고,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유지하며 관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차원에서 '자연공원 쉬트겔렌데'의 개발 방향과 전략이 결정되지 않았을까? 베를린 공원의 다양성, 부지가 갖고 있는 역사와 가치, 주변 지역과의 관계, 지역사회의 의견 등을 반영하여 '야생자연 그대로 두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큰 맥락에서 공원을 조성하고 관리한 것이 그린베를린이란 전담조직이었다면, 

실제로 이곳에 비밀스럽고 예술적인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예술가 그룹 오디우스(Odious)였다. 

1982년 베를린 예술대에서 6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결성된 그룹이었다. 이들은 공원 전역에 그들의 작품을 설치하였다. 야생의 자연 속을 걷다 보면, 문득 발견하게 되는 녹슨 유물들이 그들의 작품이었다. 공원의 자연보호구역을 통과하는 600 m 길이의 스틸 보행통로도 그들의 작품이다. 마치 마법에 걸린 장소 같은 느낌을 주는 그들의 설치물은 공원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예술가 그룹 오디우스가 만든, 자연보호구역 내 보행통로








압축성장을 이뤄온 우리나라에도 점점 폐기되는 근대 유산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국 곳곳에 폐광산, 폐공장, 폐교 등 수명을 다한 구조물들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공간을 '유휴공간'이라 부르며 활성화 방안을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활성화 방안이란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경제적인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관광이나 교육 콘텐츠를 추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수립되는 계획들을 들여다보면 사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 유산들, 꼭 '이용'해야 하는 걸까.



근대산업유산들이 수명을 다했다면,
자연으로 돌아가게 두는 것은 어떨까?

근대유산이 위치한 지역적 맥락에 따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원이 될 수도 있고, 문화시설로 고밀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유휴공간들은, 특히 지방 도시의 유휴공간들은 거주지와 떨어져, 산속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간들은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개발을 한다고 해도, 관리운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지자체가 감당하기도 어렵다. 특히나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이라면 더더욱. 


왁자지껄한 축제, 이벤트, 소비의 공간으로만 계획할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방안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하면 어떨까? 




*참고 

위키피디아 

그린베를린(Grün Berlin)

베를린관광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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