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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Oct 01. 2018

전환의 공간, 동네상권

의식의 흐름이 반영된 공간 

우리는 언제나 몰입하고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회사와 집 사이를 오가며, 회사에서는 누구보다도 공적인 사람이 되었다가, 집에 돌아오면 개인적인 사람이 된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뿐 아니라, 내면과 활동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전환' 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고 싶지 않다. 그냥 편하게 의식의 흐름대로 가고 싶어 진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주로 상업업무 중심지역에서 주택 밀집지역으로 오는 여정이다. 그 중간에 거치게 되는 지역은 상업과 주거가 혼재한 동네상권이다. 중심지역에 가까울수록 상업이 우세하고, 주택 밀집지역에 가까워질수록 상업용도는 줄고 주거가 우세하게 나타난다. 동네상권의 건물 용도는 상업과 주거를 양극단에 둔 그러데이션처럼 나타난다.


동네상권은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과 활동 패턴이 반영된 결과이다. 

집에 가는 길에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장을 보거나,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하기도 한다. 잠깐 공원 벤치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며 쉬어가기도 한다. 밤거리를 걸으면서 개인적인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상업건물로 지어놓았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거와 복합되기도 하고, 주택이었더라도 어느새 상업이나 업무가 들어와 복합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러데이션 폭이 넓어지거나 좁아지며 변화한다. 이는 마치 사람의 활동과 의식이 이 싹둑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명확하게 경계 짓기 어렵게 나타난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걸어올 때, 내 의식의 흐름은 동네길의 시퀀스 그대로이다. 시끌벅적한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정신없이 수다를 떨던 친구와 헤어지고, 연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면 경성고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에는 마트,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등등 다양한 근린 업종이 밀집해 있다. 팬시한 홍대 거리를 걷다가 보다 생활에 밀접한 가게들이 있는 이 길에 들어서면 이제 집에 가는 길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걷다 보면 경성고등학교가 나오고, 파출소와 놀이터가 나온다. 아까보다 더 조용해졌다. 그래도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고 있어서 아주 조용하진 않다. 파출소를 지나 골목으로 돌아서면 그때부터는 완전한 주택가라 조용하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 정도만 있다. 구경거리가 줄어들고 나는 집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연남동 근린상가거리 동교로27길 북단(홍대입구 근처)/ 상가가 많지만, 홍대와는 업종이 확연히 다르다
연남동 근린상가거리 동교로27길 북단에서 경성고 가는 길/ 조금씩 상업이 줄어든다
연남동 근린상가거리 동교로27길 남단/ 상업이 많이 줄었다. 경성고 건물이 길 끝에 보인다. 
경성고를 지나 걷다보면 다다르는 놀이터/ 주변엔 오피스 일부, 주거가 많다
놀이터를 지나 주택가거리에 진입/ 편의점이나 세탁소 등의 상가가 듬성듬성 들어와 있다

* 이미지출처 : 다음map 


정신없는 홍대에서 친구를 만났던 내 모습에서, 개인적인 나로 전환하는 과정은 길을 걸으면서 일어났었다. 장소를 이동하는 과정이 나의 의식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나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이런 도시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고 있는 내가 내 모습대로, 내 의식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도시.  



그런데, 이런 동네상권에 변화가 생기면 기존 주민들은 혼란스러워진다. 

주거지와 상업지 사이에서 주거와 상업이 혼재된 '전환'의 지역에 상업이 지나치게 우세해져 버리면, 기존의 내 의식대로, 살던 대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도시에서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적응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또한 상권의 변화는 긍정적인 도시의 성장의 신호일 수도 있고, 지역문화를 저해하는 문화 백화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기존 주민들의 삶에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그러데이션 같은 동네상권은 개인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으로 내면의 자연스러운 전환을 위한 시간, 경로를 제공하는 공간이 변화한다는 것은 각 개개인에게 심리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 



동네상권은 우리의 삶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때문에 동네상권의 변화는 단순히 부동산 가격의 변화로만 볼 수 없다.  외부요인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내면을 어쩔 수 없이 변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개개인에게 큰 부담이며 나아가 사회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역과 동네를 다룰 때, 우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섬세하게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더욱 인간다운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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