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백 년의 신화
저번 주말, 마지막 전시일을 코앞에 둔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전에 다녀왔다. 하루에 전시회 하나 보는 것도 벅찬 일이다. 그러나 전시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또 다른 전시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이중섭, 백년의 신화"展. 다음날 서울 일정도 빠듯했고 이번 주 주말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힘들었지만, 앤서니 브라운전을 둘러본 뒤 서둘러 덕수궁으로 향했다.
이번 전시회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개인 소장 작품들까지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놓치고 싶지 않던 전시회였다. 아쉽게도 작품 사진 촬영은 불가하다. 때문에 되는대로 핸드폰 메모장에 작품 제목만 메모해 왔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따뜻함과 행복함이 느껴졌다. 그의 삶은 너무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웠는데 그의 수많은 그림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이런 삶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그 마음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난 것일까? 아니면, 제주도에서의 행복했던 1년에 대한 그리움의 투영이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내 미소가 절로 났다.
사실 이중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소"일 것이다. 물론 이번 전시에서 "소"를 보았고, 그 힘차고 강렬한 이미지는 교과서 속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동안 알고 있던 "소"말고 더 많은 것을 담아올 수 있었다. 따뜻함, 사랑 그리고 먹먹함. 인간 이중섭은 그야말로 "사랑꾼"이었다.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그들이 서로를 부르던 애칭이 드러나 있다. (이중섭은 아고리이고 아내 남덕은 발가락 군이다. 아고리는 이중섭의 턱이 길다고 해서 붙인 애칭이고 발가락 군은 발가락이 예쁘다고 해서 붙인 이남덕 여사의 애칭이다.) 70년 전에 사랑을 볶던 이들이나 지금의 젊은이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시되어 있는 몇 장의 편지를 읽어보아도 이중섭은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했던 마음이 글자 하나하나에 뚝뚝 묻어 나온다. (그와 아내의 편지를 엮은 책이 시중에 발매되어 있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란 책이다. 나 역시 전시회에 다녀온 후 이 책을 빌려 읽었다.) 글을 읽지 않고 편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만 보아도 그의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림을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가난에 시달렸던 이중섭은 가족들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 까지 몰리게 된다. 때는 한국전쟁 시기였고 그림을 팔아서 먹고살기에 어려운 시절이었다. 결국 이중섭은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이중섭의 처가 일본인이다. 남덕은 결혼 후 이중섭이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혼자 여기저기 떠돌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의 삶은 더더욱 힘겨워졌다. 그런 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이다. 저 멀리 걸어오는 여인은 아마 아내 남덕인 모양이다. 창가에 얼굴을 내밀고 하염없이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은 중섭 자신이었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강"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니 먹먹함이 밀려들어온다. 이 먹먹한 마음으로 이중섭 생의 마지막 자락을 함께 해 준 친구, 시인 구상의 "초토의 시 14"를 읽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이중섭은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