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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Jul 28. 2020

별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

20년 7월 28일 화요일 새벽

1.

 책도, 그림도, 향초도 내게 위안을 주기 위해 사 놓았던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다. 새벽이기도 하고, 그저 깊은 밤이기도 한 날들. 오늘 새벽 나는 그 사실과 풍경을 마주했다. 위안을 주기 위한 것들이 보이지 않고, 감동적인 노랫말도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새벽.


2.

 무슨 깡으로 직장을 관둬? 요새 취업도 잘 안 되는데.


 이번 직장을 그만두면서 열댓번은 들은 말이었다. 걱정하는 말로 시작하다가도 무슨 깡으로 이래? 하는 말로 끝내는 것들. 걱정인 듯 하지만 내 앞으로의 행보를 궁금해하고, 나의 삶을 뒤적이는 말들. 어제 먹은 저녁 메뉴를 물어볼 때도 그렇게 가볍고 즉흥적으로는 물어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를 열 댓번.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글세요. 모르죠. 그저 아직은 어린 게 벼슬이라니까 그만두고 막 살아보려고요.


3.

 누구는 치기어린 어린날의 변덕이라 이야기할 것이고, 누구는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말에 흔들렸다. 젊다는 거, 어리다는 건 그런 거니까. 흔들리지 않는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


4.

 아르바이트 자리를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아르바이트로는 악명높은 호프집까지 마구잡이로 지원해 이번 주 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그래봐야 일주일에 고작 이틀, 몇 시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또 최선을 다하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5.

 니가 하는 말이 위로를 줘. 하고 이야기하던 다른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어른이라고 해 봐야 나보다 너댓살 많은 이들의 이야기. 혹은 열 몇살쯤 많은 이들의 이야기. 이상하다. 나는 힘내라거나, 괜찮다거나, 다 잘 될 거라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그들은 항상 나에게 위로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6.

 비 내리는 소리를 벗삼아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앉아있던 날들이 뜬금없이 그리워졌다. 무엇을 해야할 것만 같은 부담감에 잡히지 않던 순간들.


7.

 무엇이 어쨌든 간에 나는 또 살아내야지. 오늘을 산 적이 없는 것 처럼. 그렇게 살아내야 내일이 또 오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나의 소소한 안부들을 전할 테니. 잘 지내냐는 말에 이제는 잘 지낸다고 이야기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또 잘 지내느냐 물으면 그래, 그냥 오늘도 내일도 살아낸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8.

 삶이 버겁다. 이래서 청춘이 아니라 난춘인가. 어렵기만 한 날들. 서른의 나는, 이십 대의 나에게 무엇이라 말해주고 싶을까. 잘 버티라고, 버텨내면 다 지나간다고. 아니면 그냥 아등바등 애쓰지 말고 대충 살아가라고? 무엇이든 대충 살 수는 없겠지. 나는 열심이지 않고는 못 버티는 사람이니까.


9.

 비나 더 내렸으면 좋겠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이유가 생기니까.


20200728

여름날의 새벽, 아무것도 아닌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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