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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ug 18. 2020

우리 어른이 되면 같이 살자

어른이 된다는 게 뭔가요?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들과 입버릇처럼 종종 하던 말이 있다. “우리 어른이 되면 같이 살자.” 그때는 그저 우리가 잘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으며, 단란하기를 희망했다. 무작정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해가 지나고 청소년이라는 딱지를 떼고, 버스 요금이 720원에서 1250원으로 올랐을 때부터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혼자 살아가기 위한 준비로는 많은 것이 필요하고 이제 막 세상에 던져진 우리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서울의 집값. 서울의 값은 무엇보다 비쌌다. 내가 아르바이트로 시간당 벌 수 있는 돈은 고작 6470원(2017년 기준)에 불과했고 6470원을 한 달간 꼬박 모아봐야 백만 원이 겨우 넘거나, 백만 원이 되지 않거나. 그마저도 성인이 되면서 내 앞으로 옮겨온 보험료나 휴대폰비를 충당하고 나면 남는 돈에서 자립을 꿈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의 값은 내가 뮤지컬이나 영화, 책에서 봐오던 것보다 더 사악하게 올라있었다.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별 거 아니었다. 언젠가 글에도 쓴 적이 있듯이 삐빅-이었던 교통카드 소리가 삑-으로 변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어른이 되면 누구나 반짝거리는 오피스룩에 모던한 백을 하나 들고 “네 대리님, 그 건은 이미 처리했습니다.”하고 멋지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에 다니며 겪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엑셀로 단순 정리하는 일이나 거래처와 팀장님 사이에 불화가 없을 만큼의 조율을 하는 일뿐이었다. 어른, 생각만큼 전문적이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구나 하는 생각. 적어도 내가 어른 껍데기를 쓰고 하는 일들은 다 그랬다.

 하루는 내가 미성년자에서 벗어났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어른이 원래 다 이래?”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뭐가 어떤데? 하고 되물었다.


 “그냥 사는 게 재미도 없고, 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냥 버텨내고 있는 거 같아서.”


 엄마는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런 게 어른이야. 하루하루 버텨내면서 사는 거. 엄마도 버티면서 살아. 사람은 다 버티면서 사는 거야.”


 그 말에 괜한 오기가 생긴 내가 괜히 입을 비죽이면서 그렇지만 나는 버티고 싶지 않은걸. 버틸 이유도 없는 거 같은데. 그냥 불합리하다, 지루하다고 소리 지르고 싶은데. 하고 대답하자 엄마가 대답했다.


 “지키고 싶은 게 생기면 버텨져. 지켜야만 하는 게 생기면 버틸 수 있어. 너도 다 알게 될 거야.”


 엄마와의 대화를 다시 쓰며 돌이켜보아도 나는 지켜야 할 것이 아직 없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할 이유도 없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둔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도 말이다. 어른이 다 이런 거겠지.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은 시간당 6470원이었던 내 몸값이 8950원으로 오른 것 정도. 친구들과 매점에서 천 원짜리 피자빵과 피크닉을 나눠먹으며 했던 이야기를 수제 맥주집에서 잔을 부딪히며 한다는 것 정도.


*


 학창 시절에도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은 여전히 남아 술자리에서 계속된다. 우리 그런 말 했었잖아. 맞아. 그런데 지금은 누구는 학교를 다니고 누구는 직장을 다니고. 서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멀어서 차마 쉽사리 같이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이야기한다. 우리 언젠가 어른이 되면 같이 살자. 진짜 어른이 되면 함께 살자. 하는 이야기를.



20200818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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