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고받는 거라면서요.
스무 살 이후 두 번의 연애를 했다. 한 번은 미성년자였을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스물한 살 까지 햇수로만 삼 년을 만난 연애였고, 두 번째는 일 년을 조금 안 되게 만난 연애였다. 한 번은 너무 멋모르고 시작한 풋사랑이어서,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흥미진진하고 어려웠기에 끝이 난 연애였다. 두 번재는 내 의사는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어려웠기에 헤어졌다. 두 번의 연애를 겪으며 느낀 것은 모든 관계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거였다. 종말이라니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 그저 끝나는 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형태가 모호하고 시기가 적절하지 못해 사고처럼 찾아오곤 하는데, 나는 이런 순간에 무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듯 다른 사람들의 러브 시그널은 잘만 잡으면서 항상 내 것에만 고장이었다. 몇 번의 착오 끝에 만나게 된 두 번의 사람들과 연애는 다시 생각해도 행복한 시간들이자 엉망진창인 시간이었다.
두 번의 연애를 끝내면서 각각 느낀 것들이 있었는데,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하나였다. 남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 이상으로 내가 나를 사랑할 것. 당연하고 간단해 보여도 이것을 잘 해내는 사랑은 없다. 보통 나보다 너를 사랑해서, 너보다도 너를 사랑하게 되니까. 이 말은 달콤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문장이 되고 만다.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이 말은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 상태가 중요할 뿐이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다. 서로 주고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는 가진 것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랑은 내가 나에게 주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나의 연애들은 그러지 못해서 슬펐다. 때때로 바보 같고, 미숙하고, 미련해서 슬퍼졌다. 사랑하는 중에도 스스로를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을 했다. 나 때문 아니야? 내가 문제 아니야?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이 상태가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작은 언쟁만 하나 생겨도 그날 밤을 새웠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이 늘어갈수록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고, 작은 일에도 예민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일로 서로를 헐뜯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눈 사람은 둘이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에도 상처 받아 끙끙 앓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밤들이 늘어갔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이틀 밤을 새워 머리가 어지러웠고 공부하던 것들은 코로 보았는지 눈으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든 날이었다. 요즘 같은 여름밤이었다. 공기는 선선했고 나는 힘없이 자전거를 끌며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렸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가는 것은 연애를 하며 생긴 습관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동안 전화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통화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찌르르 우는 매미 소리가 가득한 밤에. 자전거를 끌고 가던, 평소와 다름없는 밤에 갑작스럽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나를 갉아먹는 모든 일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첫 연애를 끝냈다. 헤어지자는 말로 삼 년의 긴 시간을 털었다. 누군가는 부정하고, 누군가는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나보다 더 걱정했지만 나는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를 더 사랑하는 길을 택했을 뿐이니까.
내가 겪고 느낀 것들은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너도 알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들일 뿐인 것이 많은데, 나는 적어도 내 경험을 읽고 나를 더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적는다. 나는 상처 받고 무너져도 앞으로 또 연애할 수도 있고, 누구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이 찾아오는 시기는 내가 예상할 수 없다. 찾아온다는 표현은 너무 신사적인 것 같다. 사랑에 부딪히는 시기. 그러나 앞으로의 내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나를 버리면서까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 나를 버리는 것이 이해와 사랑이라고 믿었던 때의 나를 슬퍼하면서.
나는 영영 연애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글은 아니었다. 마지막 문단에 서술한 것처럼 나는 나를 더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좋아하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서로를 마주 보는 나무처럼 사랑할 것이다.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언젠가의 나는 그 사람의 품에 둥지를 만들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나도 하나의 단단한 나무가 되기 위한 삶을 살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서 내가 더 많은 이들을 멀리서, 곁에서 사랑할 수 있게.
20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