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회사를 다니던 때 보다 요즘 내 일상은 좀 더 바쁘다. 내 휴일에 대해 들은 친구는 워라밸은 대체 어딨는 거야? 라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할 정도로. 나는 주에 남들처럼 5일을 일하지만 목요일 하루만 온전히 쉬고, 월화수는 카페 낮 시간을 일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은 늦은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왜 그렇게 바쁘게만 사느냐는 말들에 그저 웃어넘길 수밖에. 구구절절 한 사람 한 사람 붙잡아 나의 지난 일들과 앞으로의 사연들을 전부 설명하는 일이 힘겨울 뿐이다.
생체 리듬이 이 생활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쉬는 날 누워서 침대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매트리스 모양이 오목해질 때까지 누워서 뒹굴며 유튜브의 지나간 영상들, 이미 한 번씩은 본 영상들을 두세 번씩 돌려 봤다. 그렇게 쉬는 날을 다 보내고 나면 몰려오는 자괴감과 실망감에 다음 날 일을 나가기 전까지 무력했다.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는 일도 좋지는 않지만, 무작정 계획 없이 쉬기만 하는 것도 내게 어울리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쉬는 날 요리를 한다. 아주 간단한 거라도 괜찮으니 집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저번 주에는 삼겹살로 된장 수육을 삶고 부추무침과 오이 탕탕이를 해 두었고, 일요일 낮에는 잠깐 일어나 강된장을 만들었다. 이번 주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큰딸이 좋아하니까, 하는 말로 엄마가 한아름 이모 댁에서 얻어들고 온 감자로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감자를 메인으로 하는 요리가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감자볶음, 감자조림, 감자튀김 정도. 밥반찬으로 또 괜찮은 한 끼로 두고두고 챙겨 먹을 수 있는 뭔가를 해놓고 싶어 찾아보던 중 백종원의 <맛남의 광장>에 나왔던 감자 짜글이라는 음식을 해 보기로 했다.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감자, 대파, 양파, 통조림 햄, 김치. 그리고 양념장. 요리를 직접 해 보기 전까지는 요리의 재미가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요리를 하는 과정도, 좀 걸리는 시간도 재밌었다. 내 요리를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가족들을 떠올리면.
목요일은 다들 바빠 흩어진 가족들이 유일하게 모여 저녁을 먹는 날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목요일이면 조금 오버스럽게 요리를 한다. 계란 프라이로 내놓아도 될 것을 계란말이를 한다거나, 반찬통에 그냥 두고 먹어도 되는 것도 그릇에 옮겨 담아 예쁘게 보이게 한다거나. 설거지가 조금 더 걸리고 준비 시간이 좀 길어지지만 같이 먹으며 기뻐할 가족들을 떠올리면 그런 수고도 괜찮아지는 것 같다.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은 언제나 중요하다.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항상 밥상머리에서 국정에 관한 것이나 심각한 오늘의 뉴스에 대해서만 토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늘도 김치 감자 짜글이를 먹으며 엄마는 오늘 하루가 너무 더웠다는 이야기를 했고, 동생은 생리대가 다 떨어졌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오늘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남동생은 자신이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는 말을 나눴다. 평소 같은 일상이 소중하다. 항상 내 휴일의 마지막은 가족들과의 단란한 식사 그리고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더 어렵고 복잡하고 정성 가득한 요리를 하고 싶다. 지금은 그저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는 일에 불과하기도 하니까. 좀 더 시간이 드는 요리를 해서, 시간이 들게 식사를 하면서 단란한 저녁 식사가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음에는 커다란 닭을 두 마리 사서 닭볶음탕을 해야지. 맛있게 먹어주는 모두를 위해서.
202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