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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ug 21. 2020

꿈을 꾼다.

꿈을 꾼다는 말이 웃기다. 꿈을 빌려온다는 뜻 같아서. 농담.

 꿈을 꾼다. 희미하게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바다를 갔던 날의 꿈을 꾸기도 하고, 어릴 적 한번 보았던 마루가 커다란 집에 누워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꿈을 꾸기도 하고, 계곡에서 벌을 잡았던 날의 꿈을 꾸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불꽃놀이의 풍경을 꿈꾼다. 지나간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나 간혹 꿈에서 본다.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행복했던 날들의 꿈이다.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최근 꾼 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래 사귀었던 연인과 이별 후 재회하는 꿈이었다. 다만 꿈에서의 우리는 다시 만날 시기를 너무 놓쳐서, 다른 행성에서 만났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재회했다.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 꿈에서 그와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너무 달라진 상황에 웃음을 터뜨릴 겨를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우주복을 입은 채로 그에게 손을 건넸고 그는 악수하듯 내 손을 붙잡았다. 우리는 손을 맡잡고 한참을 울었다. 왜 울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못다 한 안부 인사들이 악수 하나로 모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귓가에 울리는 웅웅 거리는 소리, 편안한 그의 표정을 깊이 들여다보며 울었다.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그 얼굴을 이렇게 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듦과 동시에 꿈에서 깨었다. 존재하지 않는 순간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꿈에서 깨어 한참을 울었다. 잘 지냈구나. 잘 지내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꿈은 이상하다. 현실과 이어져 있지만 현실이 아니라 허상이라는 점에서. 그저 나만의 상상이고 유대라는 점에서.

 실제로 그와 재회한다면 그리 애틋하거나 절절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꿈이라는 건 원래 없던 마음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 나는 꿈에서 깨어나고 한두 시간 정도는 그의 생각을 했다. 그의 곱슬거리던 머리카락과, 나랑 비슷한 손 크기, 하얀 손 마디마디에 새겨졌던 것들과 작은 귀. 어설프고 서툴었던 첫 연애 감정에 대한 연민.

다른 행성에서 널 만났을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난 날의 꿈.

 꿈이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일화가 떠오른다. 장자와 나비. 중국 철학에 빠졌을 때 읽었던 이야기인 <몽중몽>. 꿈속에서 꿈을 꾸는 꿈. 말장난 같지만 장자의 말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장자의 꿈을 꾸는 나비인가, 나비의 꿈을 꾸는 장자인가.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꿈속에 살아있는 또 하나의 꿈은 아닐까? 하는. 만약에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꿈 속이라면, 내가 누군가의 꿈이라면, 나의 삶이 누군가의 아니면 어떤 무언가의 찰나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그걸 알게 된다면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래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꿈을 꾸는 것보다 오래 잔상으로 남는 것은 이미 일어났던 순간에 대한 꿈을 꾸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간혹 나는 아빠가 나오는 꿈을 꾼다. 원체 아빠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많지 않아서 아빠에 대한 꿈을 꿀 때는 이미 지나간 일들이 꿈으로 나타나고는 하는데, 자주 꾸는 꿈은 아빠와 다섯 살 즈음 고모네 옥상에서 불꽃놀이를 보았던 꿈이다. 내 생에 처음으로 본 불꽃이 터지는 순간들과 아빠의 따듯한 어깨. 어릴 때는 아빠 어깨에 자주 무등을 타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몸을 아무리 웅크려도 그때랑 같아질 수는 없으니 아빠가 살아 돌아온대도 무등은 탈 수 없겠지. 어떤 때는 어릴 적의 기억으로, 어떤 때는 지금의 기억으로 꿈을 꾸는데 무엇이 더 좋다 싫다는 것보다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순간을 구간반복으로 재생시키는 기분. 아빠가 보고 싶어. 하고 입속으로 되뇌며 깨어나는 꿈들.

 아빠가 나오는 꿈들은 대체로 서럽거나 그립지만 그중에서도 그리웠던 것은 어릴 적 딱 한 번 가본 먼 친척 집에서의 풍경이 나오는 꿈이었다. 나는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루에 누워있었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기다리던 것이 아빠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걸 깨달은 순간 아빠가 나왔다. 내 기억 속에서보다 훨씬 늙었지만 정정한 모습으로. 아빠는 나를 뚫어져라 봤다. 하나씩 꼼꼼히 살펴봤다. 다 자란 키, 짧아진 머리카락, 작은 손가락, 팔뚝, 문신을 샅샅이 보더니 말을 건넸다. 나는 아빠 목소리가 기억나지도 않았는데.


다 컸네. 우리 딸.”


일어나서 한참을 울었다.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함이었으리라 짐작하면서. 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 쌓였었는데 막상 꿈에서나마 아빠를 마주하니 왜 먼저 갔느냐는 원망보다는 그래도 보고 싶었다는 말이 목 울대를 콱 막았다. 왜 그랬어 아빠. 왜 아팠어. 얼마나 아팠어. 얼마나 미안했어. 하는 말들.

그날, 옥상에서의 불꽃이 아름다웠던 날.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밤.


*


 장마가 끝난 줄 알았는데 늦은 오전에 비가 잔뜩 쏟아졌다. 글 쓰기 좋은 날이네, 생각하다가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수영하는 꿈을 꿨다. 휴가를 가지 못한 여름의 적절하고 안전한 휴가 시간이었다.


20200821

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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