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Sep 14. 2020

늦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계절이 바뀌는 순간의 여러 생각들. 

 종일 집안에만 있다보니 바깥 날씨의 흐름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 까지만 해도 조금은 후덥지근한 공기가 돌았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 심부름을 나가는 길에 이제는 좀 선선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아무리 몇 도를 웃돈다, 바람이 분다, 비가 올 것이다 하는 이야기를 일기예보로 미리 접해도 매 번 처음 만나는 순간인 것 처럼 낯설다. 특히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는. 


 계절이 넘어가는 순간의 과도기는 괴로우면서 설렌다. 괴로운 것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23년 동안 앓아온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다. 콧물을 훌쩍이고, 재채기를 하고, 눈이 가려워 계속 비비고, 아침마다 코피를 쏟는 일이 잦아지면 나는 비로소 실감한다. 온도의 변화보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몸의 변화이다. 아침마다 피가 쏟아지는 콧구멍을 휴지로 틀어막으면서 아, 환절기가 찾아왔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걸 보면. 

 오늘도 어김없이 코피를 쏟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피를 줄줄 흘리다가는 쓰러지는 거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가을이 반갑다. 올 여름이 유독 괴로웠던 탓일 거라 생각한다. 여름 내내 답답하게 코와 입을 막고 있던 마스크. 마스크 안에서 숨을 몰아쉬던 날들. 옷을 한 겹 더 입는 것도 벅차고 뜨거운 날씨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면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선선해진 날씨. 거짓말처럼 청명해진 하늘. 

 여름의 낮고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습한 기운이 맴도는 하늘의 풍경도 좋아했지만 계절이 점점 차가워지면서 높아지고 쌀쌀맞아지는 공기가 가득한 하늘의 풍경도 사랑한다. 특히 가을의 청명하고 높은 하늘은 사람 마음을 두드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똑똑, 가을이에요. 들어갈게요. 하고 마음에 들어오는. 


 공기가 선선해지고 날이 좋아지면서 다시 잘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막 시작한 공부도, 다시 처음 만나고 유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작년에는 카메라로 종종 사진을 찍으러 다녔는데 올해도 사진을 다시 찍으러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올해는 좀 더 멀리에 있는 것들을 찍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찍겠다는 생각. 

 변하는 것들 사이에 나 또한 멈춰있을 수 없으니. 빠르게 변한 계절만큼이나 나도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던 하루. 


20200914

계절이 변해가는 중의 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흘러가던 것들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