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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10. 2020

흘러가던 것들에 대해

어릴 적에 저는 수영을 했었답니다. 아주 잠깐.

 어릴 적에는 유독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시켜보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다. 내 아이의 숨겨진 잠재력이 뭘까? 하고 생각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돌잡이에서는 연필을 잡았고, 연필을 잡은 걸 봤지만 공부 대신 부모님은 나를 발레 학원에 데려갔다. 일곱살 때 일이었는데. 나는 발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게 학원에 간 참이었고 또래에 비해 당시에는 키가 큰 편이라 발레복을 입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앞에서 서성였다. 뒤로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선생님은 내게 무엇이라도 시켜보려고 상냥하게 말을 건넸지만 엄마 품에서 우물거리다가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앞으로 나서 춤을 추는 일이 아니라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그 날 엉엉 울던 나를 보고 다시는 발레 학원에 데려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유연성은 0점인 인간으로 자랐지만. 

 두 번째로 부모님의 기대를 가득 안고 갔던 곳은 태권도장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곳에서는 꽤 적응을 잘 했다. 머리를 양갈래로 촘촘 딴 어린 여자아이. 흰색 도복이 마음에 들어 폴짝폴짝 뛰면서 엉성한 폼으로 이것저것 따라했다. 부모님은 그 이후로 내가 운동에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도장이나 운동을 많이 시켰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게 수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야 할 나이에 나는 스포츠센터에 다녔다. 당시에 노란 색 퀵판을 들고 낮은 풀에서 발장구를 치다가, 깊은 풀로 들어가 제대로 된 수영을 하게 되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차갑게 발 끝에 닿는 물의 감촉. 어릴 적 내가 느낀 수영장은 꼭 네모난 틀 안에 갇혀있는 커다란 젤리 같았다. 찰랑찰랑한 젤리. 다른 아이들보다 물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 자유시간을 주면 먼저 나가서 씻는 것 보다는 한참 깊게 물 속으로 잠수했다. 그 때부터 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물 속에서는 몸이 자유로웠다. 몸이 가볍게 물을 가르고 미끄러지는 느낌을 좋아했다. 

 물 속에서는 숨쉴 수 없는 감각조차도 재밌었다.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었다. 고작해야 2미터가 채 안 되는 성인용 풀에서도 바닥까지 가 타일 하나를 툭 건들이고 수면 위로 쭉 몸을 뻗어 올라가 푸, 하고 물을 뱉으며 다시 숨을 쉬는 순간을 사랑했다. 물을 가르고 수면 위로 올라갈 때면 돌고래가 된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물고기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스무 살이 넘어 처음으로 갔던 뉴질랜드에서도 바다를 찾아다녔다. 어떤 여행지든 바다가 있어야 좋았고, 물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뉴질랜드의 바다는 내가 이십 년 동안 살며 본 어느 바다보다 아름다워서 눈에, 사진에 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눈에 보이는대로 들어갔다. 그 덕에 까맣게 타서 오기도 하고, 바닷속에서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수 있으니 다음 기회에 다른 매거진에서 풀기로. 


 부모님이 시켜서 시작한 일 외에도 나는 계속해서 하고싶은 것들이 바뀌었다. 청소년기를 지나오면서 하고싶은 게 없다, 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하고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보통은 글과 관련된 일이거나, 관련이 없더라도 예술 쪽의 일이었다. 실제로 지금의 나는 청소년기에 하고 싶어! 라고 말한 대부분의 것들을 겉핥기 식으로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스물 세살. 이제 막 시작하는 나이지만 주변에는 벌써 자리를 잡아 회사에 안정적으로 다니는 친구들도 많고, 자신의 꿈을 위해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정말 지금의 내가 원하고 하고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작한 공부도 너무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헤메이는 동안 이미 몇 학기의 대학 생활을 거친 친구들은 졸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 

 내 모든 흘러간 시간들이 그냥 지나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인생에서의 황금기, 청춘으 20대가 아니라 30대부터 시작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20대 때는 너무 힘들고, 어렵고,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라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더 많았다고. 30대가 되고 나니 안정적으로 살며 보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도 지난 내 시간들을 돌아보면, 지금 연필과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 거 아닐까. 아마 어린 시절에 엄마가 나에게 발레나 수영, 태권도 등등을 시켜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뭘 하고싶어하는 지 찾지 못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내일의 나를 기대하며 산다. 오늘 내가 겪은 일들로 차곡차곡 내일의 내가 되어가고, 또 열심히 적당히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며 살겠지. 안정적이지 않아도 행복하게. 적어도 나를 챙길 수 있을 정도로는 열심히. 

 지난 날의 경험은 그만두었다고 해서 모두 실패가 아니고, 앞으로의 날들이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내 인생의 종말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삶. 별 다를 일이 없더라도. 적당히 괜찮게. 적당히 행복하게. 


20200910

흘러간 일들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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