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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06. 2020

자전거와 하늘

그리고 코로나 블루

 요즘,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코로나 블루' 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는 터라 우울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붙은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일상이 변했다. 2.5단계로 격상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버텨가며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요즘 늦은 오전에 일어난다. 열한 시쯤 기상해 동생들과 아침을 차려 먹고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일을 나갔더라면 이 시간에는 커피를 직접 손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기계로 갈고, 탬핑 후 샷 시간을 쟀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 만큼 집에서 원두를 직접 갈아 마신다. 기계로 원두를 가는 것은 3-4초면 되는 반면에 수동 기계로 드르륵 드르륵 돌리는 일은 번거롭고 느리다. 한 줌 원두를 가는 데만 느긋하게 5분정도가 걸린다. 완전히 곱게 원두가 갈리고 나면 갈색 빛의 종이를 커피포트 위에 얹고 뜨거운 물을 부어 천천히 커피가 내려오는 것을 본다. 샷이 내려오는 것은 20초가 걸리지만, 이 원두와 종이를 뚫고 내려오는 커피는 두 잔 분량을 만들기 위해서는 10분 정도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해야만 한다.

 커피를 내리고 나서는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쓰거나, 강의를 듣는다. 새로 배우는 것들은 언제나 즐겁다고 생각하는 편인데도, 이번에 시작한 공부는 꽤 어려워서 항상 머리를 싸맨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강의를 듣고 나면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난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나면 저녁을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게 하루 일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오늘은 김밥을 만들어 다 같이 먹었는데, 내일은 뭘 하지. 하는 생각.


  무료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대부분이 지나고 나면 붕 뜨는 저녁의 여가시간이 주어지는데 보통은 소설을 구상하거나 그림을 그리지만, 오늘은 왠지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싶었다. 며칠 전 태풍이 지나간 후 선선해진 날씨가 마음을 자꾸 간질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밖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날들이 생각났다. 나는 느지막한 오후의 해가 지고 있는 풍경, 강가를 따라 난 수수한 꽃들, 물고기가 아닌 것들을 낚는 것 같은 강변 노인들의 쓸쓸한 뒷모습과 이웃일지도 모르는 이들의 잔잔하고 다정한 모습들. 강가의 자전거 도로에서는 본 적 없는 낭만들이 곳곳에 있다. 길을 잘 모르는 내게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지만, 어차피 자전거 도로라는건 쭉 갔다가 다시 쭉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확률은 현저히 적다.


 오랜만에 나와 바라본 하늘이 청명했다. 보자마자 이제는 가을이 오려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긴팔에 긴 바지를 입고 나와도 선선한 날씨 또한 한몫했다. 작년만 같았더라면 좋았을 걸.

 여름이 지나가는 순간은 다른 계절보다 명확한 것 같다.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면 뜨거운 열기는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랗게 갠 하늘에 청명한 공기가 반긴다. 푸르르던 잎사귀도 가을이 오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나른해지는 것 같아.


 한 시간 정도 항상 다니던 길로 자전거를 탔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본 것들은 새로웠다. 마스크를 끼고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오랜만에 날이 풀린 탓인지 꽤 거리에 몰린 사람들과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머리칼 뒤를 스치는 바람. 자전거 도로 강 옆의 다정한 풍경은 꽤 사라져 있었지만 좋아하던 서울의 야경은 그대로였다.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중간 쯤의 다리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여전히 찬란했다.

 또 같은 자리에 앉아 야경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천천히 살아보자. 3초를 갈아 빠르게 내려 마시던 커피도 십 몇 분을 참고 기다려가며 내려 보고. 오늘이 너무 바빠 쓰지 못했던 오늘의 글도 천천히 내려 적어보고, 시간이 촉박해 대충 샌드위치 한 쪽으로 때우던 식사도 공들여 먹어 보자는 생각. 그리고 어딜 가든 꽁꽁 싸매고 건강하게, 정말 건강하게 다시 잘 만나기 위해 살자.


 돌아오는 길이 버거웠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탓이겠지만. 몸은 버거웠지만 오랜만에 휴가 같은 시간에, 마음이 괜찮아졌다.


20200906

하지만 우리, 그래도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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