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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y 03. 2021

입원일기(10)

입원일기가 두 자리를 넘기다니.

얼른 올리고 싶어서 대충 그렸더니 삐뚤다. 내 마음처럼.. 

 드디어 퇴원하기 하루 전 날 저녁을 맞이했다.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냐면, 어제는 잠들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 아무데도 아픈 곳 없이 말끔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장 내일 모레면 출근을 해야 하고,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한 달이 넘도록 병원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보험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당장 보험금을 더 받는 일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의 약속을 져버리고 에라모르겠다 해 버리는 것은 적성이 아닌 것 같다. 별 일 없이 네 시간 동안 커피만 내리다가 퇴근하면 되는 거니까. 걱정되는 건, 혹시 포스 조작하는 법을 내가 다 잊어버렸을까봐. 

 10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슥 지나갔다. 두 자릿수를 넘어간 내 입원일이 사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내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을 보내는 일상이 싫었다. 뭐라도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 싶지만 할 일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병실 바닥을 걸레질하거나 청소할 수도 없고, 빨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10일동안 아침점심으로 치료받는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밀린 넷플릭스 다시 정주행하기, 명탐정 코난 정주행하기 같은 소모적인 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즐겁지 않았다고는 할 수가 없군. 솔직히 즐거웠지만 지루했다. 나는 정말 잘 질리지 않는 편인데도 질렸다. 바깥을 10일 내내 못 보니 답답했다. 누가 왔다가도 솔직히 그 순간만 반갑고 좋을 뿐, 이후의 시간은 똑같았다. 


 나가기 전에 뭘 해야 하는 지 계획을 세우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계획형 인간은 계획을 다 지키지는 않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를 좀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또 했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병원에 있는 내내 감각이 더뎌져서인지 또 남들보다 뒤쳐지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 너무 노력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조바심이 극에 달할 때 쯤 내 좌우명이 떠올랐다. 후회하지 말자. 왜냐면 내 극에 달한 조바심은 내가 두달 전에 박차고 나온 직장마저 좀 아까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후회해 봐야 돌이킬 수 없는 걸 알아서 후회하지 말자는 것도 있지만, 그 때의 내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나만 탓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종종 되뇌인다. 후회하지 말자. 디디. 

 취업 준비든 뭐든.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지겨웠던 병실이지만 내일이면 퇴원한다고 생각하니 좀 쓸쓸했다. 그래도 이 병원 안에서 제일 안정감있고 내 장소처럼 지켜온 자리. 아침이면 침대를 일으키고, 저녁이면 침대를 끼릭거리며 내렸던 자리. 불편하기도 했지만 커텐으로 다 가려두고 지낼 때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지만. 평생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기에 깔끔한 안녕!

오늘 아침, 잠이 덜 깬 채로 아침을 먹는 디디.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괜히 밤을 새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밤을 새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 나는 근래 4-5시간만 잠을 잤다. 일단 밤에 잠이 안 오시는 어르신들이 계속해서 보행보조기를 끌고 드르륵 드르륵 큰 소리를 내며 병실과 병원 복도를 번갈아 돌아다녔고, 문 옆 자리인 내 침대는 계속해서 그 보조기 소리와 쿵쿵대는 문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까무룩 잠이 들고 나면 체감상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일곱시 반이면 '식사 왔어요.'라며 밥을 준다. 피곤한 일이다. 규칙적인 삶을 산다는 건. 웃긴 것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도 점심이면 어김없이 낮잠을 자느라고 저녁에 또 새벽까지 눈을 감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새벽까지 인스타그램을 타고 타고 보다가 오랜만인 시를 발견했다.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사건"이라는 시였다.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듯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최승호, <눈사람 자살사건>

새벽에 시를 읽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따듯했을까? 눈사람의 마지막은. 욕조에서의 따뜻한 죽음은. 그랬으리라 믿게 됐다. 

 눈사람 자살사건을 읽고 따듯한 욕조에 담겨 있는 눈사람 타투가 하고싶어졌지만 잠시 참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하나가 더 늘어나면 엄마에게 엉덩이 두 쪽을 다 맞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퇴원해서 집에 가게 되면 강아지부터 씻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곧 미용을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한 번 싹싹 씻겨줘야지. 그리고 방을 정리하고 짐을 정리한 후에는 저녁을 준비할 거야. 엄마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없다고만 했다. 오랜만에 월남쌈을 할까 고민했다. 다들 좋아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집에 가면 더 이상 사고나는 악몽은 안 꿀 거라고 확신했다.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 요 며칠을 계속해서 차 사고가 나는 꿈을 꿨다. 사고는 쉽게 나지 않지만,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더 조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여러분 입원일기를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코딱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게요. 디디의 조금 정제된 일기장 브런치에서 일상을 지켜봐 주세요. 그간 읽어준 마음닿는 독자분들을 위한 간결한 인사. 


 다들 조심스러운 하루, 건강한 하루 되길. 


20210503

드디어 퇴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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