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새벽 지나가는 또, 또 사랑 생각에!
새벽이면 싱숭생숭이다. 뭐 특별히 이별하거나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요즘 내 인생에 사랑보다는 이별이 빈도수가 잦은 편이고, 거의 매일같이 맥주를 마시고 잠들기도 하지만 그다지 슬픈 것은 아닌데도. 새벽이 나를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마치 비오는 날의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오후의 습한 공기처럼.
최근에 버스를 타고 평소 활동 범위를 슬슬 벗어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가을이 오기는 왔구나. 그리고 난 결국 가을까지도 사랑찾기를 포기하지도 않고 시도하지도 않았구나. 예전에는 잠시라도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울고싶던 날들이 있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그 때는 내 옆에 '누가'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라도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든다. 막무가내로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며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퍼부어주던 날들. 어떻게 새벽이란 게 자꾸 마음을 들춰서 또 지난 사랑과 지날 사랑의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어찌 됐든지 내가 한 번 퍼부어주기 시작한 마음을 받는 상대는 끊임없이 받고 받은 것에서 떼어 주기를 반복하다가 먼저 지치거나, 질리거나. 언제나 내 마음을 다 부어주어도 모자랄 것 같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퍼다 날랐더니 금새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특히 사랑에. 이제 다 갖다주고 남은 게 없어 나는 사랑에 관해서만은 염세주의자인 것이다. 사랑을 굳이 찾아야 하나? 사랑 없이도 나는 숨을 잘 쉬고, 매일매일 연락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매일매일 연락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안부 전화에 깔깔대버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떤 결론이 되었느냐면 결국 나는 사랑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랑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죽을 정도의 외로움쟁이는 아닌 것이다. 처음에는 엄살도 좀 피우고, 외로우니 누구라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매일같이 했지만 이제 막 마지막 연애에서 헤어진 지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사랑 없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것이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이 전부 사랑 없이도 괜찮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예전의 나는 "사랑은 살아가는 데에 필수지!"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누구나 사랑을 하고 있고, 사랑에 절절하게 울부짖기도 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하는 것이 인생의 해피 엔딩일 거라고 믿었지. 좋은 가정을 이루고... 좋은 아내나 남편이 되어주는 것. 참아주고 사랑하는 것들. 뭐 그런 진부하고 무용한 생각을 했더랬지.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마지막 연애를 마치고 약 1년정도를 쉬어가며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혼자가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혼자일 때 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혼자인 순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순간인 것 같아서. 그래서 아주 이르지만,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지만 그래도 혼자 살아보기로 했다. 우선은 심적으로.
가을 새벽. 겨울의 눈 쌓인 새벽보다 따듯할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예측할 수 없어서 옷을 더 싸매게 만드는 단어들. 가을 새벽. 새벽이 지나가는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글을 적는다. 그냥 적어도 맥주를 마시며 글을 적는 지금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20211030
저는 이제 혼자인 편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