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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ug 02. 2021

어쩌다 파주(2)

술. 숙소에서의 저녁.

이 글의 경험은 수도권 및 비 수도권 코로나 단계 격상 이전에 다녀온 국내 여행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방역수칙에 유의하며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였으나, 섣부른 판단으로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어 미리 사과의 말을 붙입니다.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겠습니다.



 우리는 숙소에 가기 전에 장을 보기로 했다. 전날 내가 간단하게 와인 안주를 사온 것을 제외하면 우리 손에 들려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재료를 본격적으로 사서 만들까 했지만 S가 말렸다. 밀키트가 잘 되어있으니 그거나 하나 사자! 하는 심정으로 근처의 이마트로 향했다. 이동하면서 내내 생각했다. 차가 있으니 좋구나. 어딜 가든 이동이 용이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담으로, S와 통화하면서 글을 쓰는 중인데 장 볼때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장 볼 사진을 찍기에 우리는 너무 숙소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하나도 찍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간다.


 마트에서 주차를 마치고 들어가서 바로 식품 코너로 향했다. 우리가 사기로 한 건 명확하게 밀키트, 술 두 가지 였기 때문에 헤맬 필요도 없었다. 휴일이라서인지 가족들이 종종 보였다. S와 나는 장을 보면서 같이 살면 어떨까 우리. 하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 같이 살게 되면 불 보듯 뻔하게도 저녁을 함께하자는 명목 하에 우리는 술을 마실 것이다. 맥주 한 두잔이라도. 그러다 오늘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나 둘씩 떠들다가 지쳐 잠들겠지. 각자의 공간을 보장해주기로 하자. 방 두 개인 아파트에서 사는 거야. 우리는 너무 먼 미래에 대해 떠들다가 아주 이상한 걱정까지 했다. 근데 우리 이렇게 둘이 살게 되면, 한 달에 십 키로는 가볍게 찌겠는데. 하면서.

둘이서 하룻 밤에 먹을 술을 사서 정리해 뒀다.

 가벼운 밀 키트와 술 몇 개를 샀다. 술 몇 개라고 하기에 술을 고르는 나를 보면서 S는 그걸 어떻게 다 먹어! 하고 윽박질렀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내가 모자란 것 보단 많은 게 낫지 하고 웃었기 때문에. 아마 S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본인도 납득했을 것이다. 모자란 것 보다는 역시 남는 게 차라리 낫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여행에 대한 취향을 공유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다행히도 둘의 견해가 같았다. 여행은 쉬러 가는 거다. 천천히 쉬엄쉬엄 보고 숙소에서 시간을 좀 보내자. 정말 종종 이럴 때면 진지하게 S가 실은 내 잃어버린 반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숙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위치도 나쁘지 않으면서 당연히 내부도 괜찮은 곳으로. 사실 여행지보다 숙소를 먼저 정했다. 여행지엔 뭐가 있어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예쁘고 좋은 숙소가 있는 곳에는 괜찮은 관광지나 볼거리가 하나 쯤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고른 숙소였으니 나쁠 리가 없다. 우리가 고른 숙소는 파주 출판단지 중심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다. 지혜의 숲(이번 파주 여행에서 내가 제일 기대했던)과 가까운 것도 메리트가 있었고, 주변이 상가나 관광지와 가깝지 않아 조용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아기자기한 숙소 내부 사진. 인테리어가 귀여웠다!

 숙소 주변은 운전하기도 편하고, 차 댈 곳도 자유로워 좋았다. 내부야 말할 것도 없이 에어비앤비 사진 그대로였다. 아기자기면서 깔끔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대충 장본 것들과 짐을 풀어두고 우선 쉬기로 했다. 저질 체력 집순이 두명이서 파주까지 여행을 온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파주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고 돌아다녔으니. 체력이 말이 아니었다. 둘다 살짝 잘까 하다가 빔 프로젝터를 틀었다. S와 서로 볼거리를 추천하다가 티격댔다. S는 집중력이 거의 다섯 살 수준이었다. 계속해서 하나를 추천해서 앞부분만 보고 바꾸고, 앞부분만 보고 바꾸고. 물론 내 의견을 반영해주느라 그런 거였지만. 그렇게 자주 바꿀 필요는 없는데. 아빠 안 잔다 수준의 콘텐츠 교체가 일어났고, 다섯 번 쯤 바꾸고 떠들고 웃다 보니 배가 고팠다.

 아까 사온 밀키트를 꺼냈다. 다짜고짜 술부터 까서 마시기에는 아직 대낮이었다. 네 시쯤 됐었나. 우리가 선택한 밀키트는 파스타였는데 사진을 보니 오일파스타였던 것 같다.

 내가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약간 안절부절해하는 S를 의자에 밀어넣고 칼질을 시작했는데, 내각 걱정됐는지 S가 초단위로 힐긋거렸다. 결국 막판에는 S가 다 했다.

S가 거의 다 만든 파스타 …

 S가 대부분 만든 오일 파스타를 와인과 같이 먹으며 빔을 틀어놓고 봤다. 파스타와 함께 내가 사왔던 바베큐 모둠 소세지도 구웠는데, 양이 많은가? 싶었는데 역시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오늘 먹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먹을 수 없고, 우리는 두고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쉬엄쉬엄 먹자고 이야기했다. 틀어둔 빔프로젝터에는 영화 <미드소마>가 나오고 있었다. S와 나는 서로 알아주는 호러 마니아인데, S는 이미 미드소마를 봤지만 내가 안 봤다는 말에 그럼 그걸 보자고 재밌다고 하며 틀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어딨냐고 내가 볼멘소리를 냈지만 S가 깔깔 웃으면서 좀 더 강하게 주장하지! 하고 미드소마를 틀었다. 영화는 온통 새하얀 대낮이었다. 대낮의 기괴한 공포영화. 그리고 S와 마시는 와인과 맥주가 재밌었다. 대낮의 기괴함도 마음에 들었고.

 S는 영화가 반 조금 넘게 지나갔을 때. 그러니까 우리가 와인은 한 잔쯤 남기고 다 마시고 캔 맥주도 각자 다 비웠을 때 취해가기 시작했다. 사실 고된 하루 운전 일정을 생각하면 진작 취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컨디션이었는데 용케 버텼네 싶었다. S는 취하고도 맥주 피처를 반 정도 같이 비워 줬다. 그러고는 바로 쓰러져서 잠들었지만. S와의 긴 밤은 오랜만이네 하며 연신 잔을 부딪혔더니 나도 헤롱거렸다.

 긴 밤이기는 했다. 새하얀 공포 영화를 보며 떠드는 긴 밤. 아직도 나눌 얘기가 남아서 계속 이야기하던 밤. 막판에는 나도 남은 맥주를 다 비우고 잠들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S와의 남은 여행의 하루도 잘 보내야지 하고 되새겼던 긴 밤.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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